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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니 만났더라면 아니 보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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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은초 댓글 2건 조회 956회 작성일 21-06-06 07:48

본문

 

  매일같이 밤저녁 무렵에 나는 훌라후프 돌리기 운동을 한다. 언제나 손에는 리모컨을 쥐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종편TV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나오면 채널을 고정 시킨다.

본방사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이 프로그램을 아주 눈여겨보는 편이다.

  지난해 어느 날도 이리저리 채널을 찾다가 마침맞게 나는 자연인이다를 방송하는 채널에 고정을 하고서는 운동에 열중하려던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훌라후프도 내던지고 TV 앞에 앉았다. 그날의 주인공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한눈에 알아볼 그런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을 나는 나직이 중얼거리고 말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자연인으로 산에서 사는 사람들 거지반은 지지고 볶는 세상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열하고 신산했던 삶에서 벗어나 남은 시간은 자신에게 오로지하고 싶어 산속을 택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맛에 넌더리가 나서 자신의 응어리진 가슴을 다독이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아! 내 짝꿍 재덕이가 왜 저 산에서 살고 있을까? TV를 보는 내내 가슴이 뻐근하게 아팠다. 더군다나 진행자 이승윤 씨는 건장하기 이를 데 없는 몸짱 중에 몸짱인데 비해 재덕이는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왜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표고버섯을 썰어 넣고 숭덩숭덩 수제비를 뜨는 품은 홀아비 꼴이 줄줄 흘렀다. 쥐코밥상을 차려놓고 진행자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나왔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IMF를 맞았고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한 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 매일매일 아내와 전쟁을 치르며 살았다는 이야기, 자식들에게 한창 돈 들어갈 시기에 제대로 밀어주지 못해 가슴 아팠다는 이야기였다.

낯선 이의 이야기였다면 듣는 그 순간만 안쓰러웠겠지만 내 짝꿍 재덕이의 이야기는 가슴에 맥놀이 퍼지듯 저녁 내내 우벼댔다.

낮에 끓여 보온병에 담아둔 둔 쌍화차를 한 잔 따라놓고 식탁에 기대앉아 아스라이 옛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지주 다른 데 없고 오뉴월 측간 다른 데 없다는 말처럼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골 형편은 내남없이 궁색을 면치 못했다. 지지리도 꾀죄죄한 아이들 틈에서 차림새가 단연 돋보이는 아이는 내 짝꿍 재덕이었다. 형제들이 줄줄이 사탕같이 매달린 여느 집들과는 달리 과수원집 외아들이었던 재덕이는 늘 여유로웠다. 또래들에 비해 키는 멀쑥했지만 시력이 안 좋아 앞줄에 앉다 보니 나와 짝꿍이 되었다. 재덕이와 짝이 되어 가장 좋았던 건 미술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10색의 크레용을 썼지만 재덕이는 24왕자표 크레파스를 가지고 다녔다. 나에게 무슨 색이든 맘껏 써도 좋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 시절에는 책상 위에 38선 같은 줄을 그어놓고 조금만 넘어와도 짝끼리 으르릉대기 일쑤였는데 우린 누가 넘어가든 넘어오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과가 익어갈 무렵 매일같이 내 가방 속에다 홍옥 사과 두 개를 살그니 넣어 놓았다. 어느 날엔가 내 가방 속에 사과와 낯선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스토우 부인이 쓴 톰아저씨의 오두막이었는데 책 속에 쪽지가 있었다.

삼촌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라며 아주 재미있으니 나에게도 읽어보라는 거였다. 읽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 재덕이가 빌려준 세계 명작동화는 나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토요일 오후 나는 단숨에 책 한 권을 읽어냈다.

 이튿날 책을 돌려주기 위해 재덕이가 사는 동네까지 걸어갔다. 벼가 익어가는 들길을 지나 야트막한 가르맛길을 두 번이나 넘은 후에야 재덕이네 동네에 이르렀다.

과수원 입구에서부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 앞에 서 있는 재덕이의 자전거를 보니 바르게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망아지만 한 개 두 마리가 나를 향해 목줄이 끊어질 듯 짖어댔다. 마루 끝에 앉아 장죽에 불씨를 뻐끔거리던 재덕이 할머니가 나를 보시고는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로 왔는지 시시콜콜 물었다. 계집애가 먼 길까지 싸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며 나를 뻘때추니 취급을 하는 눈치였다. 고추 멍석 위에 책을 두고 나오려는데 재덕이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빙긋 웃으며 반색하는 재덕이를 보는 순간. 내일 학교에서 돌려줘도 될 책을 굳이 먼 갈까지 돌려주러 온 이유를 스스로 짐작하고야 말았다.

데려다주겠다며 따라나서는 재덕이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들길을 따라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분홍 코스모스 꽃을 따서 내 얼굴에 갖다대며 니캉 꽃캉 닮았다라며 씩 웃었다. 아마 그날 소나기가 내렸다면 우린 황순원의 소나기속의 주인공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되던 해에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동창회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 제일 먼저 재덕이를 떠올리며 30년 만의 해후를 눈에 그려 보았다. 마흔 중반으로 향하는 코흘리개들의 면면에서는 30년 전의 모습은 언뜻언뜻 스쳐 갈 뿐 희로애락의 흔적들로 이미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여들었다. 동창회가 시작될 때까지도 나는 출입문 쪽에다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여흥이 무르익어갈 때쯤에야 헐레벌떡 들어서는 작달막한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짝꿍 재덕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내가 미리 자리를 잡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내 옆자리로 재덕이를 불러 앉혔다.

그 옛날 처음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소년은 더 이상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조그만 사업을 한다는 근황만 교환한 뒤 원치 않는 눈치라서 세세히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부잣집 외아들이었던 프리미엄은 노름판 초장 끗발 개 끗발이 되어버린 걸까. 청년기 장년기를 넘어오는 세월 동안 재덕이의 삶에서 신산함이 묻어났다.

  동창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나는 피천득 선생의 인연한 구절을 곱씹었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날 재덕이를 아니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16년이 흘렀다. 재덕이를 TV 프로그램에서 볼 줄이야! 어연번듯하게 잘 사는 모습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휑한 가슴에 오가리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이 자꾸만 나를 아리게 한다.

따뜻한 쌍화차 한 잔이 싸늘하게 식어있다. 아니 만났더라면, 아니 보았더라면 좋았을 내 짝꿍 재덕이다.

그랬더라면 cosmos1972, 재덕이가 내게 줬던 그 선물만 오로지 간직하고 살 텐데…….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예전 테마수필에 쓴 '첫사랑'을 좀더  덧붙일 일이 있어 재구성했습니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언젠가 "재덕씨"의 사연을 방송하던 내용을 저도 시청했던것 같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찬찬히 봤을 터인데 그 때  절반쯤은 보고 절반쯤은 해찰했던 것 같아  마치 필름이 중간중간에 끊긴 것 같이 희미하기도 하네요. 글을 읽으며 말씀한대로 "황순원의 소나기" 엇비슷한 얘기거리는 없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봤습니다. 하여튼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기에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