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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정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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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3건 조회 811회 작성일 21-07-2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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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 유감


정장(正裝)을 할 기회는 날이 갈수록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날 일터의 차림새는 기본이 정장이었다. 따라서 캐주얼 차림은 휴일이나 방학에나 가능했던 문화에 길들여졌다. 정년퇴임하고 세월의 흐름에 비례하여 정장차림 기회가 감소한데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이즈음엔 한 해에 겨우 몇 차례 기회가 있을 동 말 동하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헐렁한 간편복으로 계절을 주기로 바꿔 입는 게 고작이다. 따라서 퇴임 후 지속하는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기에 맞춤한 아웃도어(outdoor) 차림이 가장 중요한 외출복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어금지금한* 생활의 연속이기에 특별히 옷차림새에 신경 써야할 이유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동네 은행이나 우체국을 비롯해 마트를 드나드는 이름 없는 노인이다. 그들 기관에서 창구 직원이나 계산원들이 대하기 녹록치 않은 존재일 뿐 기억해 둬야할 정도로 탐탁한 고객이 아니기에 차림새를 어떻게 하든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개의치 않을게다. 그렇게 별스런 존재가 아님에도 아웃도어 몰골로 함부로 드나드는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지 않을 요량에서 나름 조신하게 행동하려 힘쓰고 있다. 그런 차림으로 아무 곳이나 거리낌 없이 드나들며 무례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몰염치를 볼라치면 같은 세대임에도 낯설고 황당해 고개를 돌리기 일쑤이다. 물론 편하고 활동에 무리가 없다면 개의치 않는다는 주장에 절대로 동의하기 어렵다는 땅고집은 무모한 오기일까.


젊음을 담보했던 일터를 지킬 때 신었던 구두와 양복을 아직도 새것 같이 신발장과 옷장에서 긴 잠에 빠져있다. 구두의 경우 퇴임 무렵에 구입했던 것을 비롯해 퇴임 후 B회장이 선물로 준 것 등 두 켤레가 온새미로 신발장에 모셔져 있다. 그럼에도 부드러운 재질의 신발이 안전하다는 이유로 그런 구두를 잇달아 구입해 대령하는 아내의 배려에 수굿하게 따르고 있다. 따라서 신발장에서 깊이 잠든 그들 구두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방치했던 까닭에 아마도 머지않아 폐기해야 할 것 같다. 한편 양복이나 점퍼를 위시해 패딩 따위도 새것과 진배없어도 유행에 뒤졌다고 거들떠보지 않는 아까운 것들이 그들먹하다. 흔히들 ‘옷이 날개다(Fine feathers make good birds)’라고 한다. 그에 부응하지 못할 정도로 유행에 뒤진 옷일망정 늙은이들이 정갈하게 차려 입으면 흠이 될 까닭이 없다. 하지만 정장해야 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들은 옷장에 기약 없이 감금된 상태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는 서러운 모양새이다.


신발이나 옷에 대한 가치관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이가 많은 걸까. 이에 대한 아내와 나는 견해 차이가 현격하다. 나는 그들이 낡거나 해지지 않으면 비록 유행에 뒤졌을지라도 마르고 닳을 때까지 입거나 신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내는 때가 되면 그들을 새로 장만해야 한다는 주관이 뚜렷하다. 자기 것만 그리하지 않고 내 것까지 뭉뚱그려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처리한다. 그 때문에 신발의 경우 오랜 된 보통 구두 두 켤레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부드러운 재질의 구두를 두 켤레 째 구입해 신으라는 묵언의 강요에 길들여진지 오래이다. 그 뿐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입어왔던 패딩, 점퍼, 남방이나 티셔츠와 바지가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새로 유행하는 제품으로 바꿔 입어야 한다는 지론을 반박할 재간이 도통 없다. 그게 낭비라는 생각에 떨떠름해도 입을 꾹 닫는 게 상책이라는 사실을 매구같이 터득해 순응하고 있다.


오늘도 드레스 룸(dress room)에 들어가 보니 옷걸이에 바지와 티셔츠를 비롯해 남방 따위가 서로 자기를 입어달라고 기웃기웃 수런거렸다. 서둘러 낯익은 바지와 남방을 하나씩 골라 입고 손주 유진이가 치료를 받는 치과병원에 다녀오기 바쁘게 벗어 제자리에 도로 되돌려 놓았다. 몇몇 새것은 왠지 아깝고 손때를 묻히는 게 내키지 않아 냉큼 손을 댈 용기가 없어 짐짓 망설이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는 아직까지 양복을 새로 구입했던 적이 도통 없다. 숨겨진 속내를 곧이곧대로 꿰뚫어 샅샅이 들춰보지 못해 잘 모른다. 전후 사정을 유추컨대 값이 만만치 않아 쉽게 지갑을 열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이를 역으로 얘기하면 생활에 여유가 없는 옹색함을 웅변하는 단면이지 싶어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에 짠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얼추 두 해 가까이 주야장천 집안을 뱅글뱅글 맴돌다보니 결코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서 자유롭다고 단언키 어렵다. 어쭙잖은 나이 때문에 활발한 사회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는 어수선한 세월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괴질(怪疾)이 덮침으로써 공식적인 외부 모임의 기회가 씨가 마를 정도로 꽉 막혀버렸다. 따라서 간편복 차림의 간단한 시적인 만남도 부쩍 줄어들었다. 게다가 정장 차림의 의례적인 모임은 기껏해야 한 해에 몇 차례가 고작이다. 이렇게 길들여진 때문일 게다. 최근엔 정장을 하고 집을 나서려면 되레 쭈뼛쭈뼛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럴지라도 며칠 뒤에 개최될 아주 작은 소모임에는 가마솥더위에도 불구하고 넥타이라도 매고 나가는 격식을 갖추고 싶은 바람이다. 비록 덜떨어진 유치한 발상이라는 힐난이 빗발칠지라도 그리 채비하고 나들이에 나서고픔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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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금지금하다 : 형용사로서 서로 엇비슷하여 정도나 수준에 큰 차이가 없다.

 

2021년 7월 17일 토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아! 교수님.
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가고 행사 자리 만들어,서 신사복 입으신 멋진 교수님 청할 날을 고대합니다.
날씨마저 더워서 정말 모두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건강 잘 챙기셔서 좋은 날 오면 기쁘게 뵙길 원합니다.

임영숙 올림

김재형님의 댓글

김재형 작성일

선생님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요즈음은 간편한 평상복이 제격인 것 같읍니다.

사모님은 시대 감각이 대단하십니다.
유행 지나고 오래된 옷 들일랑 모두 버리시고
새옷으로 깨끗하게 선생님을 챙기시니  복 받으신
 분이 십니다. 두분 건강하시고 즐거운 노후 보내시기
바랍니다. 김 재 형  배.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더운 날씨에 잘 계시는지요?
이곳은 유난히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삼복더위가 어떤 건지 오지게 실감하며 지냅니다.
선생님의 글에 유난히 공감이 가는군요.
오래 정장 차림의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퇴직 후의 옷 처리가 만만찮아요.
저희 집도 양복이 동복 춘추복 하복 각각 2벌씩 장롱이 비좁은 데도 아직 버리질 못하고 있습니다.
저 옷을 입고 우리 가족 생계를 책임지느라 고생한 피땀이 어린 옷이라 생각하니
토사구팽 같아서 못 버리겠더라고요.
이런 고민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선생님, 양복에 넥타이 매고 외출하신다니 양복이 좋아하겠어요. ㅎㅎ
더위가 빨리 물러가면 좋으련만요.
건강 잘 챙기십시오.
지난 2주간 큰아들과 손자가 집에 와서 2주간 머물다 오늘 갔습니다.
며느리가 둘째를 출산해서 조리원에 있는 동안이라서요.
손자가 어찌나 분잡스럽든지 집이 난장판이 되어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