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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마님운동과 머슴운동 - 한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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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1,441회 작성일 19-11-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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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운동과 머슴운동

 

우리 부부가 운동을 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는 관점에서는 닮은꼴이다. 그러나 그 운동의 성격이 판이하다는 맥락에서는 유전적 특성이 전혀 다른 이종(異種)에 속하며 이는 다름이다. 이립(而立)의 중반 모진 병마 때문에 큰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아내가 택한 수영은 현재 진행형으로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내의 수영 이력은 서른 해를 훌쩍 넘긴 상태이다. 그에 비해 나는 지천명 중반 무렵에 등산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세월동안 한 주일에 대여섯 번씩 오르내리고 있다. 운동의 동기가 건강이라는 이유는 서로 닮은꼴이다. 하지만 같은 운동이라도 아내는 승용차로 오가며 실내 수영장 회원권을 구입하기 때문에 마님운동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해야 간편한 아웃도어 차림으로 매번 세 시간 가까이 산길을 걷는 신역 고된 머슴운동이다. 이는 신분이 달랐음을 웅변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아내는 전생에 대갓집 따님이었을 게다. 하지만 나는 하찮은 아랫것인 천출이었음을 함축하는 게 아닐까 싶어 뜨끔했다.

 

부부의 나이가 네 살 차이라는 점은 다름이다. 한편 둘 모두 고희(古稀)가 최대공약수라는 사실은 닮은꼴로써 같음이다. 아내는 기축(己丑)생 소띠로 올해 일흔 하나인데 비하여 나는 을유(乙酉)생 닭띠로 올해 일흔다섯이라는 사실은 다름이다. 그런데 소띠인 아내는 평소 매사에 신중하고 과묵하지만 결정된 일은 매섭게 매듭 짓는다. 이에 비해 나는 행동이 급하고 좌고우면하며 맺고 끊음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목표를 지향하며 백발이 성성한 여태까지 서로를 닮아가려 애쓰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음에도 가정환경의 다름이 이유였을까. 대가족 집안에서 뼈대가 굵어지며 자란 나와 핵가족 가정에서 성장한 아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나 가치관의 다름을 좁히거나 메꾸는데 신경을 쓰기도 했다. 형제자매라는 외형적인 조건으로 볼 때 여섯인 나와 다섯인 아내는 서로 닮은꼴이었는데 말이다. 하여튼 결혼 초기 양가 가풍의 다름으로 인해 덜컹거리던 마찰이나 갈등을 극복하면서 지금은 일심동체가 되어 우리 가정만의 고유한 가풍과 문화를 정성스레 쌓고 또 쌓고 있다.

 

어떤 음식이 제일 맛이 있을까. 우리의 뇌가 기억하는 시원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익숙해진 맛으로 그 꼭대기에는 어머니가 지존처럼 자리하고 계신다. 결국 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졌다는 얘기이다. 신혼 초 아내의 손맛은 어딘지 낯설고 당기지 않았다. 기름에 볶거나 육류보다는 시래기 같은 촌스런 재료와 된장 같이 토속적이며 짠맛에 길들여진 내게 아내의 상차림 음식이 썩 내키지 않았다. 세월이 약이던가. 내 입맛의 고향이었던 어머니가 오래전 저승으로 떠나셨을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시나브로 아내의 손맛에 익숙해지며 입맛 또한 그녀와 닮은꼴로 변해버렸다.

 

아내의 전공은 미술이고 내 삶에서 일터의 갈래는 컴퓨터공학으로 양자 사이는 간극이 넓고 깊어 다름이 뚜렷하다. 그런데 아내가 그리던 그림을 내가 전혀 모르고, 내 전공을 아내가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서로 간섭하거나 껴들지 않고 존중했던 점은 닮은꼴이었지 싶다. 학창시절 예체능 과목은 항상 꼴찌 수준을 맴 돌아 열등의식을 느끼며 그 분야에 뛰어난 친구들을 무척 동경했다. 그런 때문에 배우자는 그 분야에 충분한 소양을 지닌 사람을 택하려고 생각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던 걸까. 다행히 그림을 공부했던 아내를 맞이해 소원 하나를 이뤘다. 예부터 이르기를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이 같은 연유에서 우리 부부는 수준 이하의 덜 떨어진 부류라는 측면에서 서로 닮은꼴의 동족(同族)이 분명하다. 올해로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지붕 밑에서 살아온 지 마흔다섯 해째이다. 그 많은 세월을 함께 했어도 나는 아내가 공부했던 그림 쪽엔 숙맥이고, 아내는 내 전공인 컴퓨터공학에 대해서 청맹과니다. 이런 연유에서 우리 내외는 서로를 판박이처럼 빼닮은 맹꽁이 과()이지 싶다.

 

매파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이고 아내보다는 두 살 위의 친오빠인 김 박사였다. 첫 소개를 받은 다섯 달 하루 만에 결혼을 했다. 자기 여동생임을 밝히지 않고 얼렁뚱땅 소개 받던 날 서로가 썩 내키지 않아 떨떠름했다는 점은 닮은꼴이었다. 그렇게 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매파인 김 박사가 분주하게 양쪽을 오가며 애써 오작교를 만듦은 둘의 마음에 반하는 다름이었다. 첫 인상이나 느낌은 별로였지만 김 박사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가 어느 결에 우리는 찰떡궁합으로 배가 맞아 한통속이 되었다. 둘이 짝짜꿍이 되어 헤어진 것처럼 위장한 채 김 박사를 감쪽같이 왕따 시키며 쾌재를 부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어준 김 박사는 대학에서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미국으로 건너가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두 아들 중에 하나는 강북 태생이고, 하나는 강남 태생이다. 그러므로 두 아들이 서울 태생이라는 점은 닮은꼴 혹은 공통점이고, 하나는 강북이고 하나는 강남이라는 사실은 다름이다. 결혼하고 둥지를 튼 곳이 수유리에 있는 어느 단독주택의 문간방이었다(1975). 그 집에서 큰 아들이 출생했다(1977)*. 그리고 큰 아이가 출생하던 해 강남의 작은 아파트를 매입해서 이사를 갔고 거기에서 작은 아이가 출생했다(1979)*. 또한 작은 아이가 출생하던 해 동()의 경계를 맞대고 있는 이웃 대치동의 조금 너른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를 갔었다*. 그렇게 서울에 눌러 살 줄 알았는데 전혀 연고가 없는 마산으로 일터가 정해져 곧바로 주거지를 옮겼다(198011). 그로부터 마흔 해째 마산에 둥지를 틀고 있다.

 

태어난 해와 달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물일곱 처녀와 서른하나의 노총각이 같은 날 예식장에서 똑 같은 시간에 어른이 되어 마흔다섯 해째 함께 해로하고 있음은 엄연한 같음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승을 하직할 날이 서로 다름은 분명하리라. 추하지 않은 황혼의 삶을 위해 비장하게 빼든 방법이 마님운동과 머슴운동으로 갈릴지라도 지향하는 바가 같은 평생 짝꿍의 동행이기에 좁쌀영감처럼 시시콜콜 득실을 따지며 주판알을 튕기는 감정의 낭비는 빗겨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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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봉구 수유동 472 533(현원경씨댁)

*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제2아파트 2509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산 31 3 동원아파트 12503

 

한국수필, 201910월호, 통권296, 2019101

(201971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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