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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언홍 댓글 4건 조회 897회 작성일 21-10-01 07:37

본문

                    고욤 


                                           김 언 홍 

  가을이 깊어갈 즈음이면 오일 장마당엔 단감나무묘목이 주먹보다 더 커보이는 단감 두어 개씩을 매달고 손님을 기다린다.
양평으로 이사온지 몇 해 안되어 뜰 한쪽에 흙을 퍼다 돋구어 화단을 만들고 장날 나무시장에서 감나무 한그루와 밤나무 두 그루를 사다 심었다. 다음해 봄에 보니 밤나무는 잎을 틔우는데 감나무는 소식이 감감이었다. 겨울에 얼어 죽었는가 싶어 애석한 마음에 감나무를 자꾸 들여다 보았다. 
  타지방 보다 기온이 낮은 양평은 어린 감나무묘목이 겨울을 나기 힘들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보니 죽은줄만 알았던 나무 뿌리에서 새순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추위를 이기고 용케 살아났구나. 얼어죽은 가지를 잘라 버리고 뿌리에서 새로 돋아난 어린 싹을 날마다 들여다 보았다. 감나무는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다섯 해쯤 지나서일까. 어른 키보다 훨씬 커버린 감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볼품도 없이 생긴 감 꽃을 보물이라도 되는 양 날마다 들여다 보며 어린시절 시골 외가 뒷 마당에 늘어지게 매달렸던 감을 떠올렸다. 이제 우리 집 뜰에도 빨간 홍시가 주렁주렁 열리겠구나!. 머릿속으로 감나무가 있는 풍경화를 내 뜰에 그려보며 기대에 부풀어 그 여름을 났다. 드디어 감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가을이 다 가도록  포도알 크기의 작은 열매가  더이상 크지를 않는 것이었다 . 하루는 근동에 살고 있는 손윗 시누이가 오랜만에 찾아왔다가 감나무를 올려다보며"참 오랜만에 고욤을 보네!" 하는 것이 아닌가. 고욤이라니 이건 감나무인데? 의아해 쳐다보니  이내 알아차리고 "고욤나무에 감나무 접붙인 것 사다 심었었나 보네!'"했다.
   동네 아이들이 마을길을 내달린다.
  "애들아 이리와 이것 한 개씩 따먹어봐 참 맛있다."
  몰려온 아이들이 고욤이 신기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에요?"
  "그럼 한 번 먹어 봐"
  고욤을 입에 문 아이들이 " 달다." 하더니 이내 뱉어버린다. 서리를 덜 맞은 고욤열매가 떫은맛을 다 털어버리지 못한 탓이다. 
  흥미없다는 듯 뛰어가는 아이들 뒤로 남편이 아침에 던지고 간 말을 떠올렸다.
  "고욤을 따서 단지 안에 잘 넣어두었다가 한겨울에 꺼내먹으면 얼마나 달고 맛있는데, 옛날엔 거기다가 떡도 찍어먹었어!"
  햇살 퍼진 오후 한나절 고욤나무 곁에 사다리를 세워 놓고 한 알 한 알 따서 소쿠리에 담았다. 단지에 담아 삭혀놓았다가 기나긴 겨울밤 초롱불 밑에 앉아 떡을 찍어 먹었다던 남편의 옛추억을 내 아이들에게도 만들어 주리라 생각하면서.....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고욤나무 뿌리와 줄기에 감나무 순을 접붙여 키우면 감나무인데, 애석하게도 사다 심은 첫해 감나무 순은 고사하고 그 뿌리인 고욤나무에서 싹이 자라 결국 고욤이 열었군요. 요즘 아이들 먹으라면 별로 일겁니다. 과육은 적고 씨가 대여섯 개씩 있기에...... 선생님 말씀처럼  가을에 따서 항아리에 담아 밖에 두면 얼면서 무척 달지요. 그 옛날 고욤을 그렇게 먹었던 추억이 아련하네요. 아주 오랫만 입니다. 질 계셨지요? 안부 전합니다.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 는 속담이 있는데 고욤은 다소 억울하겠어요.
우리 경상도에서는 고욤을 꾀양이라고 부르거든요.
맛이 없는 건 맞지요. 감보다 더 떫으니까요.
그때는 덜 익은 꾀양을 따서 던지기 놀이도 했거든요.
어릴 적 친구네 집 뒤뜰에 조롱조롱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린 고욤나무가 생각납니다.
언홍 선생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줘서 감사해요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샘, 요 며칠 고욤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저절로 나서 자란 것이 이젠 하늘을 덮어요. 자잘한 고욤을 얼마나 많이 달았는지.
오늘 아침에는 잎사귀가 서리를 맞아 시들어 떨어지네요. 고욤만 조랑조랑 달려 있어요. 저도 어려서 구들목에 앉은 고욤항아리를 기억합니다.
할머님 솜씨지요. 고욤이 푹 삭으면 사구에 대소쿠리나 얼기미를 걸치고 거기에 부어놓지요. 씨앗과 껍질은 남고 꿀물만 줄줄 흘러내리게. 건더기를 건진 꿀물은 작은 항아리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겨울 내내 떡 찍어 먹었어요.^^
 *사구? 보리쌀을 씻던 큰 자배기?
 *얼기미? 어레미의 방언?
 고욤도 여기서 쓰는 말이 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요.ㅎㅎ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생각났어요. 여기선 기암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