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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꽃구경 가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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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2건 조회 873회 작성일 21-10-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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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 가자기에

    박래여


   

  농부가 등 너머 강 처사 부부를 청하더니 나가잔다. 날궂이 하는 몸은 꼼짝하기 싫은데 그럽시다.’ 마음과 달리 대답을 한다. 이 정도라도 다닐 수 있을 때, 같이 가자고 할 때 가는 거다. 농부는 어디 경치 좋은 곳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자며 미리 준비를 다 했다. 김밥만 사면된다. 어디로 갈 것인지도 당신이 정한다. 걷는 것이 괴로운 아내를 배려하는 농부다. 멀리 밀양의 억새밭 구경을 가잔다.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다며.

 중간에서 강 처사 부부를 만나 함께 출발했는데 강 처사 의견은 다르다. 날도 끄무레한데 빨래를 잔뜩 널어놨다고 멀리 갈 수가 없단다. 가까운 꽃 잔치에 가잔다. 함안 악약 둑길 아래가 온통 꽃밭이란다. 거기로 갔다. 관광지든 축제장이든 어디를 가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다리에 힘 좋은 사람들은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꽃밭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무리 지어 뛰어가기도 하지만 다리 부실한 나는 걷는 길이 멀수록 미리 지친다.

 농부는 어디 휠체어 빌릴 곳 없느냐고 두리번거린다. 입장권 없이 들어오는 곳에 휠체어가 있을 수 없다. 간이 화장실이라도 마련되어 있으니 다행이지. 돈 안 내고 원 없이 볼 수 있는 빨 주 노 초 가을꽃이 지천인 둑길, 유유히 흐르는 강물, 꽃구경에 취한 사람들 무리까지 어우러져 아름답다. 견학 나온 유치원생들의 가벼운 뜀뛰기며 생기발랄한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꽃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다리쉼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는 나를 봤다. 데이트를 온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꽃길을 걷는다. 농부는 내 손을 잡고 천천히 걷지만 내가 걷기엔 너무 먼 길이다.

 다시 악양 둑길을 나와 다리를 건넜다. 악양루 옆의 공원에 들렸다. 거기도 사람들이 많았다.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핑커뮬리 군락이 조성되어서일까. 우리도 그 속에서 인정 샷을 찍었다. 경치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이 끓는다. 주말이 아닌데도 꽃구경 나온 사람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층과 달리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정자에 올라 다리를 쉬었다. 걷는 것이 너무 힘들다. 건너편 악양 둑길 아래 꽃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절벽위에서 힘들게 사는 소나무가 측은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풍경은 절경이다.


  “당신은 강 처사 부부랑 같이 구경하고 와. 나는 여기 쉬고 있을 게

  “나도 별로네. 꽃이 너무 많으니까 예쁜 줄도 모르겠네. 어디 가서 점심 먹자.”

 그렇게 하여 우리는 반구정과 합강정 정자를 찾아 나섰다. 비포장 산길을 돌고 돌아 찾아간 절벽 위에서 반구정 가는 길과 합강정 가는 귀로에 섰다. 반구정과 합강정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자락인 용화산 자락에 있다. 함안 조씨 두 선비가 낙향해서 산 곳이다. 반구정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합강정에는 늙은 은행나무가 있다. 건너편 남지 둑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봄이었으면 유채 꽃밭이 끝없이 펼쳐진 남지 강변이 아름다웠을 텐데.

 날은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햇볕이 나면 한 여름이고, 햇볕이 구름 뒤로 숨으면 서늘하다. 나무로 만든 쉼터에서 라면을 끓여 김밥과 먹었다. 기차게 맛있는 들밥이다. 풍경도 끝내주고 공기도 해맑은 숲 그늘에서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감정도 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점심을 먹었다. 농부가 반구정에 다녀올 동안 강 처사는 사진을 찍고, 나와 미경 씨는 수다를 떨며 쉬었다.

 그리고 반구정 반대편 길을 택했다. 자전거 도로란다. 좁다란 산길에 붙은 자전거 도로라는 표시가 을씨년스럽다. 반구정도 합강정도 지키는 후손이 있었다. 작은 텃밭도 가꾸면서. 두 곳 다 도 닦기 참 좋은 고즈넉한 곳이었다.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으니 소일거리가 없으면 외롭겠다는 생각도 했다. 운치와 멋을 아는 옛 선비들의 모습을 반추해본다. 절경인 곳마다 정자를 지어놓고 유유자적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도 하인과 노비가 수발을 다 해주었기 때문이리라.


  반구정과 합강정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빨래 걷으러 가야겠다는 강 처사를 보며 웃었다. 두 팀에 여행을 나오면 점심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에 가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는데 오늘은 일정을 당기기로 했다. 나 역시 걷기에 무리라 빨리 가서 물에서 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수영장에서 몸을 풀면 다리 시큰 거리는 것과 당기는 것이 나을까. 허리에 문제가 생겨서 온 증상이란 것을 안다. 엊그제부터 계속 한 일들이 내겐 무리였던 거다. 잇몸도 헐고 이빨도 아팠다. 단감 선별 조금 했다고 이 정도니 어떻게 단감 수확 다 하도록 견디겠나. 농부가 보기엔 일도 아닌 것이 내게는 힘든 일이니 말이다.


  집에 도착해 한 시간쯤 쉬었다가 수영장에 갔지만 다리는 풀릴 기미가 없다. 심하게 절뚝거리게 된다. 농부가 저녁을 해결하고 가잔다. 단골 돈가스 집에 갔다. 그 집 시어머니랑 잘 안다. 잘 계시냐고 물었다. 요양병원에 계신단다. 서울에서 두 다리 인공관절을 하고 내려왔는데 시아버님 밥을 못 해 주겠다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단다. 그 할머니도 한이 많은 노인이다. 젊어서부터 억척스럽게 장사꾼으로 살아오며 자식들 뒷바라지 하고 백수 남편 먹여 살리고 살림 일구었다고 들었다. ‘내가 이 놈의 영감 늙으면 보자고 이를 갈았다 아이가.’ 할아버지는 평생 백수로 살면서도 폭력과 오입질로 할머니 속을 뒤집은 적도 많단다.


  결국 할아버지의 자업자득이지만 할머니가 더 불쌍하다. 영감님 밥 해 주기 싫어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치매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어느 집이든 할아버지가 건강하면 할머니가 먼저 망가지는 것을 본다. 돈은 있지만 모실 며느리도 딸자식도 없으면 할머니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 편하다. 그 할아버지는 혼자 잘 지내실까. 우리 시부모님 생각이 나서 서글프고, 우리 부부 생각해도 서글프다. 농부는 걷는 것이 부실한 아내를 위해 최대한의 서비스를 한다. 고맙지만 어떤 때는 이렇게 남편을 힘들게 하면서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있다. 


  돈가스 집 안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농부는 차를 끌고 와 코앞에 세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나처럼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두 노인 곁에 사는 자식과 며느리가 가장 고달프다. 맏자식 맏며느리가 아닐 경우 더 힘에 부친다. 나도 두 노인이 어느 선이 되면 형님네가 모시고 갈 줄 알았다. 두 노인이 맏자식에게 의탁하길 원하니까 그렇게 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두 노인을 오래 모시다 나도 노인이 되고 환자가 되자 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함께 살거나 가까이 오래 살면 고운 정은 금세 잊어지고 미운 정만 남는다는 말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 몸이 고단하면 꽃구경도 귀찮아지는 것처럼.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허리 문제로 걷는게 문제 된다니 어려움이 많겠습니다. 아직은 쨍쨍해야 할 터인데... 하기야 이제 겨우 70대 중반인 내 짝궁도 척추협착증 때문에 걷는 것을 싫어하고 ..... 수영에 한사코 매달리고 있지요. 아마도 수영을 시작한지 40년쯤 되고... 나는 등산을 시작한지 20년 조금 넘었지요. 등산에 동반 시키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어쨋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짝궁이 잡다한 병치레를 자꾸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답니다. 나이들어도 이런저런 병에서 자유로워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그래도 잘 지내시지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 한 달 만에 답장 드리네요.ㅋ
죄송합니다. 단감대봉 수확 기에는 컴 나들이 할 짬이 없어요.
며칠 전에 끝내고 가장 편안하게 쉬는 시간입니다.
온종일 부부가 같이 있어도 타인 같이 지내요.
각자 자기 좋아하는 것 하면서.
저는 오랜만에 글쓰기에 푹 빠졌습니다.
허리가 아파 오래 있다가는 혼이 나지만 컴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
사모님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