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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공세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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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855회 작성일 21-10-2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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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여행

윤복순

 

익산역에 갔다. 장항선을 타 보기로 했다. 대천까지는 알지만 그 위로는 잘 모른다. 온양온천 차표를 샀다. 완행열차는 휴일에도 예매를 하지 않았는데 좌석이 있다.

익산 군산 장항 서천 판교 웅천 대천 청소 광천 홍성 삽교 예산 신래원 도고온천 온양온천 이렇게 이어진다. 처음 들어보는 지명도 있다. 열차는 들녘을 달린다. 들판은 은은하고 부드럽고 여유롭고 풍요롭고 평화롭다. 자연스러운 이런 것들을 맘껏 보라고 천천히 달린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이 맛이야.’

손을 흔들며 나락에게 콩에게 배추에게 구름에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KTX는 속도가 빨라 바깥 구경도 느긋하게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좀 할 만하면 터널로 쑥 들어가 자연과의 대화를 뚝 끊어 놓는다. 일요일 완행열차로 느림을 즐긴다. 햇살까지 좋아 금상첨화다.

온양역에서 관광안내도를 보며 여행지를 공세리성당으로 잡았다. 시내버스가 그 앞까지 간단다. 정류장에서 보니 4개 코스가 있는데 배차간격이 뜨문뜨문 이다.

택시를 탔다. 공세리는 아산만에 인접한 곳으로 조선시대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창고가 있었던 곳이라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80 칸짜리, 1만 여 평 창고 건물은 중종 18년에 지어졌고, 영조 38년 폐창 될 때까지 운영 되다가 건물이 헐리고 1897년 그 자리에 공세리 본당 구 성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다고 택시 기사가 설명을 해 준다.

기사한테 명함을 받았다. 성당 주변을 구경하고 온양온천역으로 돌아올 때 시내버스를 만나지 못하면 전화 드린다고 했다. 이미 익산행 열차표는 끊어 놓았다. 친절하고 박식한 기사님 덕분에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다.

성당까지 가는 동안 전라도 얘기를 했다. 정읍 내장산은 전국적으로 단풍이 제일이다. 정읍역에서 내리면 바로 역 앞에서 내장산행 시내버스가 30분 간격으로 다닌다. 여행객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내장산에 많이 온다. 온양도 공세리성당이 문화관광지이니 열차시간과 시내버스가 연계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그러면 택시가사는 뭘 먹고 사냐고 기사님이 묻는다.

성당에선 야외예배를 보고 있다. 이 성당은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국가 보호수 5그루를 비롯한 거목들이 많아 아름다움은 물론 오래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곳을 비롯한 내포지역이 한국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라고 불린다. 바닷물이 삽교천을 따라 육지 깊이 들어와 포구를 이루고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었는데 서양 선교사들이 바로 이곳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몸가짐 조심하자는 마음이었는데 그 이상으로 몸도 마음도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성당 안은 텅 비어 있다. 소리죽여 의자에 앉았는데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인간세계에서 선()계에 들어와 몸과 마음을 샤워하는 기분이 들었다. 낮아진 마음으로 성당 옆의 고해소에 들어갔다. 고해성사 보는 방법이 적혀 있다. 신부님이나 상담사는 없다. 잘 살고 있는지, 무심코 한 말이 상대에게 상처준 일은 없었을까, 교만하진 않았나, 양심 속이는 일은 없었을까 돌아보았다.

버스정류장에 가니 30분 기다리면 버스가 온다는 안내판이 있다. 동네고샅 구경에 나섰다. 벽에 이명래고약 광고가 있다. 이곳 초대 주임신부인 드비즈신부가 프랑스에서 가져온 원료를 기반으로 고약을 만들어 종기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그 비법을 당시 복사였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이명래고약이란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약국에서 팔면서도 처음 알았다.

조금 내려가니 석벽이 쌓여있고 비석들이 즐비하다. 조선시대 공세창고가 있을 때 쌓았던 벽이 다 무너지고 일부만 남은 것을 한곳에 모아 쌓고, 그 당시 주민들에게 선량을 베풀었던 분들의 공적비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석벽과 같은 곳에 모셨다. 창고 벽의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할머니 한 분이 수수를 털고 있다. 어릴 때 수수를 쪄서 논에서 새 보면서 한 알 한 알 까먹었던 기억이 나 할머니한테 인사를 했다. 아무 반응이 없다. “시내버스는 이쪽에서 와요, 저쪽에서 와요?” 또 말씀이 없다. 쪼그리고 앉았다. “귀가 먹어 아무 말도 안 들려.” 우리 할머니도 그랬었는데. 웃으며 90도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다.

정류장에 오니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 차를 타면 익산행 열차를 타는데 지장이 없다. 시간도 절묘하게 잘 맞는다며 역시 나는 행운아야, 감사했다. 버스가 왔다. 온양온천역 가요? 반대편에서 타라고 한다.

, 큰일 났다. 반대편에는 몇 분 후에 버스가 온다는 안내가 없다.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잠시 심각해졌다.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완행열차를 놓치면 다음에 오는 새마을을 타면 된다. 무궁화호 표를 가지고 새마을을 타고 차표검사를 하면, “난 할머니라서 글씨를 잘 몰라, 익산 간다고 해서 탔어.” 할머니 태를 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성당에서 몸과 마음 양심샤워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때 15분 후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안내가 떴다. 15분이 10분이 지나도 여전히 15분 후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다. 일요일만이라도 시간에 쫒기지 말자. 느긋해졌다. 바로 버스가 도착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시내버스는 구불구불 동네를 다 거친다. 자꾸 시계가 봐진다. 아슬아슬하게 열차를 놓칠 것 같다. 바쁜 내 마음을 아는지 시골동네에선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어 일사천리로 달린다. 시내에 접어들어 몇 번 신호에 걸렸지만 온양온천역에 넉넉하게 내려 주었다.

아직은 할머니 아니라고, 양심불량한 일도 하지 말라고, 예매해 둔 완행열차 잘 타라는 배려였던 것 같다. 가을 들녘과 공세리를 눈에 마음에 꾹꾹 담고 왔다. 성당 안에서 선()샤워도 했다. 이 힘으로 가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것이다.

2021.10.13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지난 60년대 대학 재학 시절이었습니다. 군산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가 장항 구경을 하고 싶어 군산과 장항을 오가는 배를 타고 장항에 들려 겨우 동백정(?)인가를 구경하고 여기저기 헤매며 구경했었고, 온양엔 여러 차례 갔었음에도 겨우 온천과 호텔을 전전했을 뿐 "공세리 성당"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랐습니다. 아니 우리 문화나 역사에 무관심하게 살았다는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빠름을 추구하는 요즈음인데 완행열차에 의탁해 여행길을 즐기신 넉넉한 마음에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좋은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양평에도 공세리라는 곳이 있는데, 나라에서 세금을 거두어 보관하던 곳이라 하여 공세리라 부른다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엔 같은 지명이 꽤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