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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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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1,077회 작성일 21-11-0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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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등산로의 수로(水路) 옹벽에 글귀를 쓴 이는 누구일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등산로 초입의 임도(林道)를 걷는데 산 쪽으로 개설된 수로의 콘크리트 옹벽에 한자로 쓴 “上善若水(상선약수 :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가 눈에 띄었다. 도로가 개설된 이후 30여 년이 넘도록 이끼가 끼거나 미세먼지가 더께더께 내려 앉아 거무튀튀해진 옹벽에 날카로운 돌이나 쇠꼬챙이로 선명하게 휘갈겨 썼는데 달필이었다. 한자와 달필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때 최소한 장년 이상의 어느 누군가 썼지 싶었다. 한글세대인 젊은 층은 한자에 대해 청맹과니나 다를 바 없어 보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지나칠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누가 보라고 그런 글귀를 썼는지 숨겨진 연유를 어림할 재간이 없었다. 요즘 세상이 어지럽고 뒤숭숭한 꼴을 한탄하며 장노년층의 일부라도 진정한 의미를 곱씹으며 현실을 되새겨보라는 의도가 담긴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진의가 어디에 있던 떡 본 김에 제사 모신다고 했던가. 이참에 상선약수에 대해 되새겨 보련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8장에서 이렇게 이르고 있다.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지라도 다투는 일이 없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자리한다(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 상선약수/수선이만물이부쟁/처중인지소오)”. 여기서 ‘상선약수’가 나타난다.


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설파했을까. 기본적으로 예로부터 전해지는 유수칠덕(流水七德) 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첫째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또는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이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물은 잘난 체하며 스스로를 높이려 들지 않고 낮은 곳으로 겸허하게 흐르며 자신의 모습을 바꿔 현실에 적응한다, 결국 부드럽고 강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려들지 않는다’. 둘째로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이다. 셋째로 ‘청탁을 막론하고 구정물도 받아주는’ 포용력이다. 넷째로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너그러운 융통성이다. 다시 말하면 ‘물은 그릇의 모양이나 형태를 탓하거나 거역하지 않고 담기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섯째로 ‘바위도 뚫는’ 인내와 끈기이다. 여섯째로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이다. 일곱째로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 등이 그들이다.


고려의 나옹선사는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 여수여풍이종아)”라고 일갈했다. 여기서 중심 화두는 ‘흐르는 물처럼 살라’는 조언이다. 왜 이렇게 일렀을까.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면 썩어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다는 관점에서 고인물이 되지 말라는 역설적인 강조의 반어법이 아닐까. 아울러 물은 막히면 돌아가고 조급하게 서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앞서려는 다툼을 모른 채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맥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넌지시 이르는 묵언의 가르침이리라.


“지자(知者)는 왜 물을 좋아 하는가요?”라는 자공(子貢)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답은 많은걸 시사한다. “물은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관점에서 사람의 미덕과 흡사하다. 낮은 쪽으로 무질서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도 늘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관계로 틀이나 법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정의(正義)와 같다. 또한 깊은 계곡으로 낙하해도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제 길을 찾아 흐르는 관계로 지혜를 웅변한다. 아울러 물은 연약해보여도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는 까닭에 슬기의 단면이다 끝으로 세상에 모든 게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깨끗해지기 때문에 비뚤어진 사람을 교화시키는 이치이다. 이런 특징이 곧 지자의 성품을 닮음이라고” 일렀다. 이상과 같은 철학이나 가치관이 상선약수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뒷받침이 아닐까.


어쩌면 상선약수는 물에 대한 예찬 성격이 짙다. 이와 결이 다른 얘기일지라도 한 가지 부언(附言)한다. 물이 어디에 흐르느냐 따라 달리 호칭했다. 그 예이다. 서울의 북악산을 중심으로 할 때 오른쪽인 인왕산의 물을 백호수(白虎水), 왼쪽의 삼청동 뒷산의 물을 청룡수(靑龍水), 남산의 물을 주작수(朱雀水)라고 불렀단다. 한편 같은 물이라도 산 정상의 물과 산 아래 물의 맛이 다르고, 석간수와 모래에서 솟아나는 물의 맛이 다르단다. 그런가 하면 흙속에서 나는 물은 맑으나 텁텁하고, 흐르는 물은 고여 있는 물보다 맛이 좋고, 응달 물이 양지 쪽 물보다 맛이 좋다는 귀띔이다.


상선약수에서 ‘상선’은 가장 합리적이고 최상이라는 의미로서 삶에서 으뜸의 방법은 물처럼 살아가는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삶에서 최고의 선택은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혜를 물에서 배우라는 고결한 가르침이 담겨 있음을 웅변하고 있지 싶다. 왜냐하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막히면 알아서 돌아가면서도 절대로 되지 못하게 앞에 나서거나 우쭐대지 않고 낮은 곳에 자리하는 겸손의 미덕이 넘쳐난다. 게다가 어떤 형태의 그릇일지라도 그 모양이나 형태를 가리지 않고 담기는 유연성이 탁월하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이(利)나 탐욕을 위해 다툼을 벌이지 않아 넉넉하고 너르며 깊은 성인군자의 풍모를 닮았다. 이 같은 존재의 물을 최상으로 꼽아온 선현들이 더욱 크고 높게 보여 존경의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한국수필, 2021년 11월호(통권 321호), 2021년 11월 1일
(2021년 9월 29일 수요일)

   

댓글목록

김재형님의 댓글

김재형 작성일

상선약수: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명언  잘 감상했습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에서 잘난 체 아는 체 하지 않는 겸손과
겸양의 미덕을 만인에게 깨우침을 주고  가르침을 주는  명언입니다.
우리 모두 "상선약수"의 뜻을 가슴에 새겨 시기 질투 그리고 다툼
없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