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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행복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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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언홍 댓글 2건 조회 870회 작성일 21-11-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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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사했는데 한 번 놀러 안 오려오?'
한동안 보이지 않아 궁금했던 이웃여자가 길에서 마주치자 호들갑을 떨며 반색을 했다.
'안 그래도 요즘 통 안보여서 어디 외국관광이라도 갔나 했어요.' '호호호 외국도 갔다왔지요.' '그새 또요? 갔다온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아이고 그깟 놈의 돈, 죽을 때 지고 갈 거요 이고 갈 거요, 그저 기운 있을 때 구경도 다녀야 해요. 아! 덕기네 할머니 좀 봐요. 그렇게 팔팔하던 양반이 갑자기 쓰러져서 운신도 잘 못하잖아요'. '하긴 그래요. 그런데 어디 갔다 오셨는데요?' '아 뭐, 유럽이란 델 한바퀴 돌고 왔어요. 그런데 이번 여행은 재미가 없었어요.' '왜요?  구경거리가 신통찮던가요?' '아 그게 아니고 한꺼번에 여러 곳을 돌아보고 와야 하니 가이드가 어찌나 끌고 다니는지 눈요기만 하느라 발바닥이 아팠어요.'

 

  비록 눈요기만 하다 발이 부르트는 한이 있어도 저 여자처럼 살아봤으면  원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괜히 심술이 나서  남편이 들으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우린 언제쯤이나 되야 유럽여행을 해볼까나?' 흘깃흘깃 쳐다보며 빈정거리는 아내를 참다못한 남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금 우리가 외국여행가게 생겼어? 아이들 좀 봐 아이들' '아이들이 뭐?' ' 앞으로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을 텐데 외국여행타령이야' '그려, 만날 아이들 핑계 대다가 머리 허옇게 늙어 죽지, 뭐' '저 마누라 말하는 꼴 좀 봐, 그래 가자 가, 영국이든 파리든 지옥이든 가자고' 들고 있던 신문을 팍 내던지더니 방으로 힁허케 들어가 침대에 벌렁 눕는다.
 

  한동네에 살면서 십년지기처럼 절친했던 친구가 있다.   이상하게도 그 친구는 내게 유별나게 신경을 썼다.  입는 옷, 들고 다니는 가방, 하물며 내 머리 모양까지 관심을 두었다. '애 그거 얼마짜리니? 어디서 산 거야?'  ' 머리 참 예쁘게 나왔네! 어느 미장원에서 했니?'
  사실 내가 입는 것, 들고 다니는 것, 모두 저렴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특별한 위치에 놓고 저울질했다.  내 느낌으로는 그랬다.
잦은 질문과 관심에 차츰 짜증이 날 무렵 친구는 부산으로 훌쩍 이사를 했다.

  이듬해 봄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잘 있었니?
  잘 있었느냐는 말로 서두를 시작한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그녀에게 어떤 친구였었는가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나 말이야 중학교에 들어갔어. 주부들을 위한 프로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못한 어머니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란다. 나 그동안 부끄러워서 말을 안 했는데 나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거든.

  그녀의 유별난 관심은  자신의 부족함에서 오는 열등감 때문이었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가슴 안으로 후회와 자책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상처를 진작 알아 어루만져주지 못한 내 옹졸함이 부끄러웠다. '그래 잘했다.' 마음으로나마 그녀를 축복했다. 늦은 발길이지만 그녀의 행보에 힘이 실리기를 기도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시샘이 때로는 우리 삶에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녀처럼.

  유럽을 못 가면 어떠랴. 나보다 못한 이웃도 있다는걸 기억하자. 생각을 돌리니 내가 무척 행복한 여자처럼 느껴진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힘들게 사는 친구. 가진 것은 많으나  가정의 불화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친구. 유방암을 앓아  가슴 한쪽을 들어내어 수영복도 맘대로 못 입던 친구.  돌아보면 나보다 못한 남도 많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부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실에 만족하면 행복이 아니겠는가.

 목에 구멍을 뚫어 호수를 연결해 목숨을 이어가던 남편의 친구가  있었다. 그의 장례식에 갔다 온 날 남편이 말했다. '죽자사자 기를 쓰고 일만 하더니 결국 그 돈, 다 쓰고 떠났네, 우린 건강한 것만으로도 큰 행복인 거야'

  행복한 생각이 행복한 기운을 끌어온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행복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온다.  

댓글목록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꽤 오래 전에 써두었던 글입니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3주 전쯤에 대구에 갔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직했던 사람이 자수성가하여 어엿한 큰 사회사업체를 운영하는 분의 초대였지요. 그는 40이  넘어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거쳐 47에 대학에 입학해 예순을 넘은 나이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만나보니 지금도 일 중독자처럼 열심히 일하더군요. 물어봤지요. 그런데 자기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나요. 지금쯤 좀 쉬면서 즐기는게 행복 같았는데..... 과연 행복이 무엇일까요? 돈, 명예,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