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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지리산에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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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771회 작성일 21-11-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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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놀다

윤복순

 

10월이 간다. 말할 수 없이 좋은 가을날씨다. 극치라는 게 이런 걸까. 단풍을 보러 기차를 탔다. 버스가 어떻게 연결될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일을 저질렀다. 오늘의 운에 맡기기로 했다. 고생을 하면 고생을 하는 대로 좋고, 행운을 만나면 또 그대로 더 좋다.

남원역에 내렸다. 광한루를 먼저 갈까, 실상사를 먼저 갈까. 바로 실상사 가는 버스가 왔다. 앞자리에 앉아 지리산을 감상하며 버스기사의 설명을 들었다. 운봉에선 앞이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이라고 알려준다. 등산복 입은 사람도 걷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지리산은 십 수번 째다.

길옆의 나무들도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산 정상은 흰 구름과 어울려 눈 호강을 시켜준다. 손을 흔들다, 박수를 치다, 빨강 노랑 주황단풍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쁘다, 참 좋다,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실상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논밭에 있다. 그게 궁금했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에 넘어간다고 하여 건립하였단다. 2대조, 3대조에 이르러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 1468년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에 기거 하면서 명맥을 이어 왔다. 그 뒤 3(三創) 하였고 이런저런 흥망성쇠를 겪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보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있고 좌우에 베트남에서 이운(移運)해 왔다는 종이로 만든 보살입상이 있다. 종이로 만들었다는 데 흥미를 가졌는데 금물을 입혀 겉으로는 분별할 수가 없다. 약사전에는 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4000근의 철을 들여 주조한 철불 그대로다. 이 불상은 천황봉과 일직선상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기를 일본에 보내지 않겠다는 호국적 이념에서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약수암에는 목각탱화가 있었는데 현재는 금산사 성보박물관에서 관리한다. 문경 대승사에서 목각탱화를 보았기에 서운하지는 않다.

실상사에서 백장암까지 걸었다. 걷는 동안 사과농장을 만났다.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지리산의 단풍보다 아름답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부자가 되었다. 우리 포도나무만큼이나 늠름하다. 사과나무를 사진에 담았다. 가던 길을 뒤돌아 과수원 사과 파는 곳으로 갔다. 15킬로그램 한 박스를 택배로 부쳐달라고 했다. 주인은 맛도 안보고 사냐고 한다. 이런 사과나무라면 먹어볼 필요도 없다. 주인이 걸으면서 먹으라고 두 개를 덤으로 준다.

백장암 올라가기 전 변강쇠 백장공원이 있다. 변강쇠와 옹녀가 떠돌이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골짜기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백장암계곡에 옥녀탕, 음양바위, 태아바위 등의 명칭이 있어 이에 착안하여 공원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장승이며 조형물이 퍽 해학적이다.

백장암까지는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수청산 거의 정상에 있다. 백장암은 처음이다. 실상사에서 못 본 대웅전도 국보 10호인 3층 석탑도 이곳에 있다. 석탑은 네모난 지대석 위에 별개의 돌로 탑신 굄대를 조성하여 얹고 3층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은 다른 탑들과 달리 탑 사면과 옥개석에 천인상등 불상이 돋을새김 되어있다.

대웅전과 3층 석탑이 실상사에 있지 않고 왜 백장암에 있을까 궁금했는데, 화재로 200년 동안 실상사의 스님들이 이곳에서 생활할 때 대웅전을 짓고 석탑을 옮겨오지 않았을까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본다.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눈뜨기가 편하고 숨쉬기도 순하다. 3층 석탑을 둘러보고 다시 대웅전에 들어가 국보 관람료를 불전함에 넣고 나왔다. 걸어서 올라온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다. 주위가 고요하고 산봉우리는 더 높다. 지리산의 품만큼 내 마음도 깊어졌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버스 한 대가 저쪽에서 왔다. 남편이 빨리 내려가 차를 세웠고 나는 무릎이 시원찮아 뛸 수가 없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귤 두 개를 드렸다. 인월까지 가는 함양에서 오는 버스다. 인월에서 다시 남원가는 버스를 타야 해 차 시간을 물어 보니 남원버스와 함양버스 간에 연계된다고 한다.

아침에 실상사행 버스도 백장암에서 내려와 인월행 버스도 바로 타서 차 시간에 방심을 했었나 보다. 시골 버스가 2~3시간 만에 한 대라는 것을 깜박했다. 운봉 남원행 버스가 왔는데 시내버스가 아니라고 타지 않았다. 시내버스는 천원인데 직행은 3600원이란다. 아낀 돈으로 마트에 가서 과자를 샀다. 학창시절 책값 탄 돈으로 헌책을 사고 친구들과 빵집을 다녔던 기억이 났다. 대단한 횡재를 한 것 마냥 엉덩이가 씰룩쌜룩 어깨가 들썩들썩해졌다.

이런 기분도 잠시, 연계된다던 시내버스가 과자를 다 먹고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이러다 남원역에서 기차를 놓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정신이 번쩍 들어 대합실에 물으니 30분 더 기다려야 한단다. 그 시간에만 오면 충분하다.

인월 전통시장 구경에 나섰다. 말굽버섯이 십만 원이라 쓰여 있다. 한 개에 그런 줄 알았는데 킬로그램 당 그렇단다. 하나는 500~600그램 나간다고 한다. 나도 저런 말굽버섯 한 번 따봤으면 좋겠다.

제 시간에 시내버스가 왔다. 기차 타는데 지장이 없다.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자.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길은 있다. 오늘의 운은 대박중의 대박이다. 오랜만의 지리산 여행, 몸도 마음도 10월만큼 풍요롭다.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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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만추에 떠다는 지리산 품의 실상사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단풍과 어우러진 사찰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언젠가 TV를 시청하다가 "지리산 7암자 순례길"을 보면서 꼭 한번 가보리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꿈일 뿐입니다. "도솔암(경남 함양군 마천면)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전북 남원시 산내면)" 등이라던데.. 언제나 꿈을 이룰지....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가요. 꿈꾸던 지리산행 대신에 어제(11월 21일)는 충북 옥천에 있는 정지용 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늘 보람되세요.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지리산에서 산 사과를 아침마다 먹고 나와요. 맛이 좋다. 동네 사람들에게 몇개씩 주었어요. 다들 맛이 좋다고 해요. 성은 당신도 사고 싶다고 해서 사 드렸어요. 그날 날씨도 좋고 단풍도 좋고 지리산도 좋고 모든 것이 최고였어요. 차비를 몇 천원 아껴 과자 사 먹고 3만원짜리 택시 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시간 밎춰 시내버스도 오고.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