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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노욕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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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721회 작성일 21-12-0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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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도 아름답다

윤복순

 

약사문인들의 문학기행 및 약사문예출판기념이 익산에서 있었다. 매년 각 지역을 돌며 하는 행사인데 작년은 코로나19로 취소되었고, 올해는 당일로 진행되었다. 원래는 12일 행사다. 나는 이번이 처음이다.

집행부의 많은 노력으로 스케줄이 잡히고 10시에 만날 수 있었다. 서울 경기지역에선 단체버스로, 멀리 강릉 울산 산청, 가까이 대전 나주 군산, 등 열아홉 명이 만났다. 팔십대가 네 명이다.

오전엔 출판기념식과 윤흥길 선생의 소라단걷기 오후엔 가람문학관 관람이다. 출판기념식 때 아무개 선생님의 트럼펫연주가 포함됐다. 그는 서울에서 오는 단체버스를 타지 않고 혼자 열차를 타고 오시니 늦는다고 했다.

익산에 사는 S가 대전 나주 강릉에서 오는 약사들을 마중 나가니 그 선생도 KTX를 타면 시간에 맞출 수 있다. 차 시간을 알려주고 차표를 예약해 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끝까지 무궁화호 열차를 고집했고, 택시를 타고 모이는 장소에 오겠다고 한다.

기념식시간에 회원 소개가 있었다. 나는 처음이니 아는 사람 네 명을 빼고 모르는 사람이다. 참가자 명단이 단톡방에 올라왔을 때 참가자들의 글을 읽어보며 내 다름대로 연령대며 성격들을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거의 식이 끝나갈 무렵 어깨가 구부정한 노인이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뭔가를 들고 식장으로 내려왔다. 모두들 반갑게 맞았고 직감으로 그가 트럼펫 연주자임을 알았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계획을 수정해 그의 연주는 실외에서 하기로 했다.

수목원은 오전시간이라 우리 팀 밖에 없다. 오늘 행사를 위해 오카리나 연주자를 초대했는데 플롯연주도 했다. 그녀가 가을에 맞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했고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눴다.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고 상쾌한 가을바람에 낙엽비가 내렸다. 낙엽을 공중에서 잡으면 행운이라며 몇몇은 아이들 마냥 떨어지는 단풍을 잡으려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모두가 힐링이고 낭만이고 멋이었다.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는 분위기였다.

이때 한쪽에서 이런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연습에 골몰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오늘 회원 중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드디어 당신 연주시간이 되었다.

한 두음 나오다 음 이탈이다. 연주곡이 HAPPY BIRTHDAY 이니 누구도 삑사리 되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다시 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연습한 온 힘을 기울여 해 보지만 서너 음을 넘기지 못하고 음 이탈이 나왔다.

그는 이런 것에 전혀 굴하지 않았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고 악기를 불기엔 폐활량이 턱없이 부족한 나이다. 젊었을 때부터 했다면 모르지만. 조금의 연주이었지만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다시 연주가 시작 되었다.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한 음 한 음에 내 숨이 조여지고 호흡 조절이 되지 않았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이 한 음절을 연주하는 데 음 이탈이 서너 번 있었다. 연주가 계속 될 수 없는 상황까지 되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내가 다 무렴해지고 선배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가 숙여졌다.

메모지를 꺼내 악기에 끼우고 다시 도전 길에 올랐다. 겨우겨우 틀리면 틀리는 대로 이어서이어서 한 소절 연주를 마쳤다. 다시 시작했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듣는 우리나 연주하는 당신이나 주위는 가랑잎이 떨어져도 들릴 만큼 숙연해졌다.

어떻게 끝을 맺을까 숨이 죽여졌다. 숨이 찬 그가 어뗘. 더혀?”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연습 때는 이보다 잘 되었는데...”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만 세 번 하는 데 15분 이상 걸린 것 같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나이 좀 드셨다는 걸 알았다. 자기 생각만 내세우며 완행열차를 고집할 때 전형적인 노인이라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의 시간을 배려하지 않을 때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이런 마음도 있었다. 어깨가 축 쳐진 모습으로 들어올 때 내 선입견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듯 전혀 개의치 않고 평화로웠다. 선배님 연주가 다 끝났을 때 부끄러운 마음에 꼼짝도 못했다. 나는 저 나이까지 약사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저 만큼 건강할 수 있을까. 감히 악기를 배운다고 도전할 수 있을까. 그것도 관악기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약사문학 기행에 갈 수 있을까. 후배들을 위해 내 있는 모습을 꾸밈없이 다 보여줄 수 있을까. 모두 자신 없다. 15년 쯤 후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진 형편없는 내 모습만 보였다.

가람문학관에서 하모니카 연주, 하모니카 세 개로 알토 메조소프라노 소프라노 연주를 들었다. 자작시, 유명 시인의 시 등 낭송도 있었다.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직접 곡을 쓴 젊은 약사의 노래도 들었다. 오빠생각과 고향의 봄 합창도 했다.

미륵사지의 툭 트인 광장과 9층 석탑이 보이는 영지, 일몰, 국화전시, 가을공기, 나무랄 데 없는 날씨까지.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날이 지나도 익산의 문학기행은 오롯하다. 그날을 시간대별로 가만가만 돌이켜본다. 선배님의 트럼펫 연주 모습이 오래 동안 머물러 있다. 누가 노인의 열정을 노욕이라고 했나. 노욕은 노추로 이어진다고 했나.

 

2021.11.9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노약사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글을 읽다가 얼마 전 94세인 전직 교장 선생님이 펴내는 책의 뒷 표지에 게재되는 표사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그 표사를 쓰면서 많은 걸 생각했었습니다. 과연 내가 그 연세까지 산다고 할때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장수시대라고 해도 쉽게 보지 못해 무척 감동을 받았었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문학기행 때 많은 책을 받았어요. 나는 낸 책이 없어 받기만 했어요.
오늘까지 책 보는 재미에 빠졌었어요. 팔십대 선배님은 두 권이나 내셨내요.
열정은 나이에 비례하나 봐요.

내년 부터 문학기행 다닐려고 하는데 코로나19는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