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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린 시절의 여름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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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879회 작성일 21-12-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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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여름 소환 

                             

무더위와 드잡이를 하다가 6.25 전쟁과 궤를 같이했던 어린 시절의 여름을 소환했다. 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 피란은 불가피했다. 그 시절 아스라한 조각 기억의 퍼즐을 맞춰본다. 대가족이 떠났던 피란지에서 어렵사리 구한 집이 몇 해 동안 비워둬 지붕은 비가 샐 뿐 아니라 방문(房門) 조차도 제대로 없어 누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 때문인지 여름날 장마가 쏟아질 때면 썩을 대로 썩은 초가지붕 처마 끝에 커다란 구렁이가 위태위태하게 매달렸던 무서운 광경을 몇 차례 목격하며 내 머리 위로 떨어질까 봐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구렁이를 집에서 내쫓거나 죽이지 않았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려 있지 싶다. 우리의 각종 신화나 전승에서는 사악하거나 신비한 힘을 지닌 존재로 등장하는데 특히 재산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되는 모습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터주*나 업(業)*의 위치를 확보한 관계로 구렁이를 죽이거나 내 쫓으면 액운이 따른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따라서 선조들 뇌리에 구렁이는 긍정의 의미로 각인되어 해코지를 하지 않고 적당한 공존의 길을 택했다.


피란지에서 우리 나이로 일곱 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했다가 이듬해 초 고향으로 돌아와 덜컥 홍역에 걸려 어쩔 수 없이 1년을 쉰 다음 휴전되던 해(1953년)에 다시 1학년에 입학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초등학교 1학년에 3년 동안 머물다가 겨우 2학년으로 진급했던 유별난 경험을 했다. 그런데 피란에서 돌아오니 우리 동네 모든 집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다. 때문에 임시 거처로 사용할 움막을 다시 지을 동안 가족 모두가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이 시절 집안에 목욕시설은 언감생심으로 여름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어머니가 등목을 시켜주는 것으로 더위를 견뎌내야 했다. 바가지로 등에 퍼 붓 게 마련인 샘물은 얼마나 찼던 지 지금 회상해도 몸서리가 처질 정도였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하며 시나브로 익숙해졌음일까. 그 후 고등학교 때까지 여름철이면 쭈뼛대거나 망설임 없이 어머니가 시켜주는 등목에 기꺼이 내 맡기곤 했다.


피란 뒤 고향으로 돌아온 몇 해 동안 참으로 어려웠다. 누군가의 방화로 동네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을 뿐 아니라 남모르게 감춰두고 떠났던 곡식도 통째로 화마(火魔)를 피하지 못해 입에 풀칠하기도 힘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남없이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는 서러운 세월이었다. 하지만 여름날 저녁 모깃불을 피워 놓고 평상(平床)이나 멍석에 가족이 둘러 앉아 감자나 삶은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정경은 되레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어른들 틈에 끼어 얘기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몰려와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드높은 하늘에 은하수가 가득해 쏟아 내리지 않을까 공연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어른들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려 기를 쓰지만 어느 결에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면 다음날 아침인 경우가 숱했다.


그 시절 많이 피웠던 모깃불에 대한 추억이다. 보통 여름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저녁 무렵 어른들은 쑥대를 비롯한 생풀을 넉넉히 준비한다. 그랬다가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 저녁 식사를 할 즈음엔 마루나 평상 또는 멍석 옆에 모닥불을 피우고 준비한 모깃불용 생풀을 그 위에 놓으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모기를 쫓는다. 모깃불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얘기를 나누던 자리에 성가신 모기를 쫓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었다. 요즘에 비유하면 연막 소독이나 살충제를 뿌리는 것과 흡사한 대응책이 아닐까. 하지만 그 시절엔 연막 소독이나 살포하는 살충제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모깃불이 내뿜는 매캐하고 지독한 연기가 얄밉게 나만을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며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게 만들던 지 무척 원망스럽고 야속했다.


요즘처럼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더위를 식혀줄 유일한 존재가 부채였다. 그것도 접는 부채는 부잣집이 아니면 구경할 수 없었고 오로지 늘 펼친 상태로 긴 자루가 달린 타원형 부채뿐이었다. 그런 때문에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거리낄게 없는 남정네들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외진 곳의 냇물을 찾아가 멱을 감거나 집안에서 샘물을 길어 올려 등목으로 더위를 달랬다. 하지만 함부로 옷을 벗고 멱을 감거나 씻을 형편이 못되는 아낙네들은 밤이 이슥해지면 몇몇이 짝지어 냇가의 은밀한 곳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멱을 감는 것으로 더위를 쫓기도 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집에서 창문이나 출입문에 방충망이 있어 모기의 침입을 막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엔 방충망이라는 게 없었다. 게다가 방안이나 마루 등에서 잠을 잘 때 모기의 공격을 막아낼 모기장도 없었다. 그런 때문에 여름이면 살갗이 연약한 어린이들은 모기에 물린 자리가 곪거나 벌겋게 부어올라 고초를 겪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열악한 여름나기를 하다가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모기장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때부터 타향살이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모기장을 마련해 모기의 피해에 대비했던 적이 없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 모기장 속에서 안락한 잠을 잤던 경험이 전혀 없는 원시인이다.


여름하면 피할 수 없는 게 지루한 장마와 소나기를 위시한 비이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비오는 날 우비*로 도롱이*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우산이 등장했다. 내 어린 시절 우산은 한지(韓紙)에 기름을 먹여 만든 종이우산과 검은 천(cloth)으로 만든 천우산이 있었다. 오늘날 흘러넘치는 게 검은 천으로 만든 우산이다 그럼에도 그 당시는 값이 만만치 않아 서민들은 쉬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이들 두 가지 재질의 우산이 자연스럽게 시장을 석권했었는데, 신소재인 비닐우산이 출하되며 한때 시장을 지배하기도 했다. 그런데 천으로 만든 우산을 내 것으로 지녔던 게 중학교 졸업 무렵인 1958년쯤이었지 싶다.


가정을 꾸린 이후 아파트에 거주하며 완벽한 방충망 덕이었지 싶다. 모기 걱정을 했던 적이 없어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열악한 환경에 길들여진 연유일 게다. 지금도 더위로 땀이 대책 없이 솟구쳐도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은 가능한 피하려 애를 쓴다. 촌스럽게 그들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면 기침이나 재채기가 계속 나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한다. 살아온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디지털 세상인 오늘을 살면서 생체리듬은 아날로그 시대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나는 달갑지 않지만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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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주(--主) :  집터를 지키는 지신(地神). 또는 그 자리. 가마니 같은 것 안에 베 석 자와 짚신 따위를 넣어서 달아 두고 위한다.
* 업(業) : 민속에서 한 집안의 살림을 보호하거나 보살펴 준다고 하는 동물이나 사람. 이것이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생각했다.
* 우비(雨備) : 비를 가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는 우산, 비옷, 삿갓, 도롱이 따위를 이른다.
* 도롱이 : 짚,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예전에 주로 농촌에서 일할 때 비가 오면 사용하던 것으로 안쪽은 엮고 겉은 줄거리로 드리워 끝이 너털너털하게 만든다.


마산문학 45집, 마산문인협회, 2021년 12월 16일
(2021년 8월 9일 월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께서 보낸 여름날과 제가 보낸 여름날의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네요.
6.25 참화만 빼면요.
여름밤 매캐한 연기의 모깃불이 마당가에 피워지고 식구들과 평상에 앉아 땅거미가 몰려오기 전에 이른 저녁을 먹곤 했지요.
전깃불이 없어서요.
아무리 지금이 편리해도 저는 그 시절이 훨씬 그립습니다. 단 하루라도 돌아가보고 싶은 날들입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또 불면증이 심해 고생을 하고 있어 컴에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건강 잘 챙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