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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쌉싸래한 머위 향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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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5건 조회 985회 작성일 20-03-17 10:10

본문

쌉싸래한 머위 향 같은 삶

       박래녀(여)

 

 며칠 전부터 숲이 불그레했다. 벌써 진달래가 피진 않았을 텐데. 아직 매화와 산수유가 덜 졌는데. 내 눈의 착각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침에 숲을 바라보다 손 전화를 들고 숲에 들어갔더니 진달래가 참 곱게 피는 중이었다. 삽짝의 개나리도 발름발름 하다. 개나리는 겨우내 자잘한 꽃을 피워 애잔했었다. 제 철 아닐 때 피는 꽃은 꽃송이도 작고 연약하다. 제 철에 무성하게 피어야 예쁜 꽃이 개나리와 진달래다. 머위도 솟았다. 골짜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해마다 내 차지였던 야생 머위 밭이다. 늘 첫물을 따다 쌉싸래한 향기에 취하곤 했었다.

 

 농부는 아침부터 에스에스기와 씨름을 하는데 손님이 왔다. 동네 사람이라지만 낯설다.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흔 넷의 치매 어머니는 우리 동네 노인이다. 시부와 동갑이다. 노인을 모시고 있다는 아들의 하소연은 길다. 기저귀까지 차고 있단다. 노인의 아들은 뭔가 도와달라는 것 같다. 요양원으로 모시는 게 편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돈이 있어야지요.’한다. 자식들이 십시일반으로 요양비를 대야 하는데 아무도 돈을 댈 자식이 없단다. 요양원비는 한 달에 기저귀 값까지 합치면 오륙 십만 원이 들어가야 한단다. 요양원에 무료로 들어갈 길을 찾는 것 같다. 장기요양 3등급을 받았단다. 국가 혜택을 받으려면 2등급을 받아야 한단다. 돈이 없으면 요양원도 못 가는 세상이다. 젊으나 늙으나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노인이 오래 살면 그만큼 자식들이 힘들다.

 

 어젯밤 유투브에서 동냥하는 아흔여덟 살 할아버지를 봤다. 그 연세에도 성깔이 얼마나 짱짱한지 시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두 아들 앞세우고 막내아들에게 집과 전 재산에 선산까지 물려줬지만 그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선산까지 팔아먹어버렸단다. 갈 곳을 잃은 노인은 현재 막내딸 집에 기거한다. 아들에게 한을 품은 노인은 아들에게 준 유산을 돌려받으려고 법정 투쟁을 하는 중이란다. 취재기자가 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느냐고 묻자 노인은 못 사는 딸에게 미안해서 몇 십 만원이라도 생활비를 대기 위해서란다. 큰 딸은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냉대 받았다며 밥 한 끼도 주기 싫어했다.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하자 김치 하나에 밥 한 그릇을 쟁반에 담아 방바닥에 놓아주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딸들이 이해될까. 오죽했으면 저럴까. 시부모님 생각을 한다. 시누이 둘도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저 딸들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시부는 시집 온 이래 평생 당신 곁에서 함께 살아온 내게도 상처를 입히는 어른이다. ‘재산 다 주면 제사 지내고 나를 모실 줄 알았지요.’하며 아들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노인의 눈빛은 아직도 짱짱하다. 시부도 저 노인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아들은 우리 제사 지내줄 거 아이가.’ 하시며 당신 재산은 큰 아들 몫이라고 하시는 시부다. 재산 증여해주면 당연히 맏자식이니 당신들 모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유투브의 그 노인과 똑 같다. 아니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보통 노인들 당연한 믿음이 아닐까.

 

 지난해 시댁 식구들 사이에도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나는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시댁 식구들, 진짜 남이었다. 남편도 남이었다. 한 달 동안 시댁에 발을 끊었지만 ‘부전자전’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비웠다. 나를 끔찍이 위하는 남매 때문에 시부모를 외면할 수 없었다. ‘엄마, 유산 같은 거 바라지 마. 그걸 받으면 오히려 족쇄가 돼. 안 받으면 편하잖아. 엄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되잖아. 할머니할아버지 잘 모셨으니까 이젠 놓아버려. 엄마가 안 해도 돼. 엄마는 할 만큼 했어. 우리가 알잖아. 이제 그만해도 돼. 아버지는 자식이니까 아버지가 하겠다면 하도록 놔둬. 신경 쓰지 마. 우리한테는 엄마가 소중해. 엄마 몸만 챙겨. 제발 아프지 말고.’ 아들과 딸이 내 편이 되어주자 마음은 저절로 비워졌다. 

 

 날마다 오가던 시댁을 주말만 간다. 평일에는 간병인과 농부에게 맡겨버렸다. 시부는 날마다 얼굴에 내 천자를 그렸다. ‘어지럽다. 기운 없다. 다리 아프다. 허리 아프다. 병원에 가야겠다. 안 가겠다. 입원 하겠다. 안하겠다.’ 조석지변이요. 수시변덕이 몇 번인가. 그때마다 ‘아버님, 저도 환자에요. 저도 밥하고 반찬하기 싫어요. 힘들면 입원하세요. 엄니는 집에 계시면 되니까. 걱정 마시고요.’ 웃으며 응수한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시모를 집으로 모신지 5개월, 시부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엊그제도 사나흘 안에 죽을 것이라고 엄살 부리던 노인이 오늘 오전에는 읍내 목욕탕에도 다녀오시고, 이발도 하시고, 영양탕도 사 드시고 쌩쌩하게 돌아오셨다. ‘할배만 없으면 할매도 쌩쌩하다. 참말로 혼자 보기 아깝다.’며 간병인도 넌더리를 낸다. ‘할배는 진짜 못 말려. 두 분 중 한명이라도 요양원 보내라. 돈도 좋지만 나도 이젠 못하겠다.’고. 그때마다 농부와 나는 ‘고마워 자기 덕에 산다. 대충 해.’ 셋이서 상노인 둘을 돌보는 셈이다.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는 삶이다. 말 보시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창밖 숲을 본다. 불그레한 진달래꽃 빛이 나무사이로 번져있다. 머위나 뜯으러 가 볼까. 머위 향이 그립다. 이태 전부터 눈빛 바라기만 하고 있다. 농부가 뜯어다주면 다듬어서 초간장에 찍어먹기도 하고, 된장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많으면 머위장아찌도 담근다. 쌉싸래한 머위 향에 취할 때면 알랭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영혼의 미술관>,<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등의 소설이 떠오른다. 달콤 쌉싸래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잊었지만 작가의 소설은 그 맛을 음미하게 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으로 살라 하든가. 사는 일에는 완벽함도 없고 어떤 정해진 규칙도 없다. 삶이란 각자 스스로 만들어가고 찾아가야 하는 길이다. 오늘도 나는 뒤끝이 향긋한 쌉싸래한 머위 향 같은 삶을 지향한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장수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내남없이 노인 부양 문제는
가장 크고 무거우며 힘든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음에도
전적으로 자녀에게 맡기고 방치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조금 더 지나다 보면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네, 샘! 두 분이 사이좋게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해요. 밥이 문제더라고요. 반찬과 국을 안 떨어지게 해 대도 울 아베는 엄니가 차리길 바라고 엄니는 아베가 차리길 바라고.ㅋ 밥상 차려 드리면 잘 드세요. 암튼 오랫동안 두 노인의 시소게임에 지친 건 맞는데. 어쩌겠어요. 옛날 같으면 며느리가 차려주는 삼시세끼 드시며 살아야 하는데. 요즘 그게 안 되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ㅋ
건강 잘 챙기십시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선생님은 며느리로서 늘 든든해 보입니다.
강된장 만들어서 머위쌈에 소주 한 잔 생각나요 ㅎㅎ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머위쌈은 잎사귀가 좀 더 자라야 맛나요.^^ 지금은 살짝 삶아서 초장에 찍어먹거나 된장 고추장 넣고 식초 넣어 조물조물 무쳐 먹는 게 맛나요.^^  건강 잘 챙기세요.^^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아휴, 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