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닭 몰이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수필 닭 몰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언홍 댓글 1건 조회 691회 작성일 21-12-26 17:50

본문

닭 몰이

 

김 언 홍

 

농촌의 겨울은 느긋하여서 아직은 잠에 취해 있을 시각이건만 새벽닭은 어김없이 어스름을 흔들며 목청을 돋운다. 시골로 이사와 한동안은 새벽닭 울음소리에 목가적인 정취 속으로 빠져들곤 했지만 그것도 일상이 되다 보니 익숙해진 탓인지 요즘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소란스러움에 밖을 내다보니 닭장 울타리 가에 누군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 움츠러드는 어깨를 감싸 안고 밖으로 나가 보니 이웃집 할머니다. 저만치 밭고랑에 엎드려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자기 집 개를 가리키며 "누렁이가 이 집 닭장을 물어뜯었어요."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나일론 줄을 찾아다가 구멍 난 닭장 울타리를 얼기설기 엮어 매고 있는 중이었다. 닭장 안을 살펴보니 닭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을 읽은 듯 그녀가 언덕을 가리켰다.

''저기 풀숲에 숨어 있는데 영 잡을 수가 있어야지..."

그녀와 닭 몰이에 나섰다. 개한테 혼이 난 닭은 풀숲에 숨어 요리조리 피하기만 할 뿐 잘 잡히지 않았다.

 

교통의 발달로 오고가기가 용이해졌다지만 내 어릴 적 외가는 후미진 시골마을이었다. 온종일 드나듦이 한 번뿐인 버스 한 대가 고작이었다. 차가 달릴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황톳길에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복병처럼 박혀 있어서 버스는 늘 덜컹거리며 울렁증을 자아냈다. 지금 찾아가 보면. 차가 더운 숨을 내뿜으며 붕붕거리던 언덕도 사라지고 말끔히 포장 된 도로위로 옛 추억만 아련하다.

어느 해, 여름 방학을 외가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보자기 안에는 토종닭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한사코 마다했지만 외할머니는 굳이 버스 안까지 들고 올라와 발밑에 내려놓았다. 덜컹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그만 잠이 들었는데 소란스러움에 눈을 떠보니 보자기를 탈출한 닭이 버스 안을 휘젓고 있었다. 피하려는 사람, 잡으려는 사람들로 난장판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제풀에 조용해 질 것을 서로 붙들려고 하는 바람에 닭이 더 놀라 푸드덕대며 소란을 피운 것이다. 실랑이 끝에 닭이 잡혀 차안은 다시 조용해 졌지만 온통 닭털이 날리고 놀란 닭의 오물로 옷을 버린 아주머니는 나를 향해 입을 씰룩댔다. 미안하고 부끄러워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내내 고개도 들지 못했다.

닭은 집으로 와서도 한동안 발이 묶인 채 좁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아 먹었고 나는 알을 받아 병아리 키울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닭이 보이지 않았다. 학교간 사이에 어머니가 닭을 잡아 요리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날 얼마나 울었던가. 마당에 퍼더앉아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섧게 울었다. 저녁상에 올라온 닭고기를 한 점도 먹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던 닭을 먹기에는 마음이 너무 여렸던 탓이었을까.

 

이웃집 노인도 포기하고 돌아간 닭은 날이 어둑해지자 닭장주위를 맴돌고 있다. 슬며시 다가가 문을 열어주니 꽁지가 빠지라 뛰어 들어간다. 그 옛날 버스 안에서 탈출을 꿈꾸던 그 닭을 떠올리게 하며.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닭의 생리가 묘하지요? 아무리 낮 동안에 치도곤을 당했더라도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꼭 둥지의 입구를 찾아 맴돌거든요. 물론 스스로 닭장을 탈출한 경우도 예외없지요.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닭 한 마리 가지고 오시면서 몹시 놀라셨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그 추억을 회상할 수 있으니 다행스런 추억이라고 해야 할까요? 며칠 뒤면 임인년(壬寅年) 이네요. 남은 올해 잘 보내시고 새해엔 더욱 보람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