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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결함을 다시 돌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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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819회 작성일 22-04-0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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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함을 다시 돌아봄


혹세에 온갖 유혹과 협박이나 이(利) 앞에서 독야청청 할 수 있을까. 견뎌내며 버티기 어려운 세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세월에 돌부처처럼 꿈쩍하지 않을 재간이 없어 뜻을 굽히거나 훼절은 보편적인 선택일까. 불행하게도 질곡의 세월인 통한의 일제 강점기, 민족상잔의 6.25, 암울했던 군사독재의 시대를 지나왔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억압과 회유를 비롯해 갖은 감언이설이나 교묘하게 왜곡된 세론을 앞세워 변절을 획책한 영향이었을까. 자의 혹은 타의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버거운 현실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부역(附逆)을 했다. 지금 그들을 기필코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어 단죄하면서 지워 나감으로써 역사를 바로 잡기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때문에 상당한 인사들이 우리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다. 특히 문인들 중에 그 부류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음은 어디에 연유할까.


난세에 처하면 대부분 자기 소신을 지켜내지 못하는가 보다. 그렇다고 모두가 정의에 반하는 선택으로 천추(千秋)에 한을 남기는 어리석음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보다. 우리가 무지렁이 같은 천출이라고 얕보던 일개 기생이었던 ‘춘향’이가 무지막지하게 수청(守廳)을 강요하는 ‘변사또’에게 목숨을 걸고 정절을 지켜내려던 뭉클한 사연은 많은 것을 암묵적으로 대변하는 대목이다. 하찮게 여겨오던 기생이지만 썩어빠진 양반 나부랭이나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던 허약한 책상물림들에게 적지 않은 화두를 던져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극한의 어려움이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앞세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와 같은 탈출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앞에서 얘기했던 친일파, 6.25와 군사독재의 부역자들이 대표적으로 해당하는 부류가 아닐까 싶다. 이런 가치관이나 사상에 비해 권력의 정점에 선 절대자에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丹心歌)로 직답하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결기의 표상으로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의 범연한 기개와 충혼을 바탕으로 하는 결단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례이리라.


우매하게도 우리는 하찮은 얻음이나 허접한 이룸으로 신기루 같은 허상(虛想)이 영원하리라는 착각에 부질없는 욕심의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가 숱하다. 이런 집착이나 모순에 빠지지 말라고 선인들이 ‘권력이란 안개처럼 사라진다’라는 뜻으로 권서여무(權逝如霧)라고 일렀다. 또한 아울러 ‘열흘 붉은 꽃이 없고, 달도 차면 기울며, 십 년 가는 권력이 없다’며 화무십일홍/만월즉휴/권불십년(花無十日紅/滿月卽虧/權不十年)이라는 깨우침으로 울림을 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엔 대선(大選)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모리배를 방불케 할 만큼 닳고 닳은 정치꾼들이 불나비처럼 친소에 따라 모여들어 사방에서 준동하며 설치는 꼴이 가관이다.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검고 흰 것의 구분이나 옳고 그름도 제대로 가름하지 못하면서도 선거 후 자기자리 확보라는 사사로운 잇속 챙기기에 매몰되어 으르렁 왈왈대고 있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맞붙어 예의와 품격은 온데간데없고 진흙탕 싸움에 모두걸기를 하기 때문에 흑묘백묘(黑猫白猫) 구분이 무의미해 보인다. 이들 중에 사심 없이 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예부터 “얼어 죽어도 양반은 곁불을 쬐지 않는다”고 했거늘 언제쯤이면 진정한 선거라는 축제를 즐기며 지켜 볼 수 있을까. 희망을 접지 않고 그날을 꿈꾼다.


매화를 꽃의 우두머리라 하여 화괴(花魁)라고 한다. 그런데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을 팔지 않는다”는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의 참된 의미 되새김이 절실한 오늘이 아닐까.


사학연금, 2022년 4월호(Vol.425), 2022년 4월 1일
(2022년 2월 22일 목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잘 계신지요?  화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괴라는 말이 어감도 좋지 않고 우두머리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함몰되어 있어 그런가 봅니다. 매화가 들으면 기분이 좋을지 나쁠지 모르겠네요.
이 혼탁한 세상에 독야청청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누구든지 말이지요.
그런 기개를 고매하게 봐 주는 게 아니라 무조건 꼰대로, 또는 독불장군으로 몰아세워 버리는 세태이니까요.
선생님. 건강 잘 챙기세요.  상춘도 즐기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