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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만경강길 순풍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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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3건 조회 709회 작성일 22-04-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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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길 순풍순풍

윤복순

 

지난주에 알아둔 버스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나갔다. 제시간에 올까? 시골 행 시내버스는 배차시간이 길 뿐 아니라 일요일엔 중간에 한 대씩 빠지는 경우도 있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다음 차는 두 시간 뒤에 있다.

정류장의 시간표는 터미널 출발시간이라는 것을 버스 기다리면서 알았다. 그 시간을 가늠을 하며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빨리 버스가 왔다. 대단한 횡재나 한 것 마냥 기쁘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앞좌석에 앉아 구경을 하기로 했다.

버스는 국가식품클러스터까지 들른다. 내 차로 다닌다면 영 가보지 못할 곳이다. 아파트단지인지 산업단지인지 공사하는 곳도 많고 봉동에 아파트가 많이 생겨 도시가 되었다. 부대는 군단이 이사 가고 연대가 들어왔다고 한다. 상전벽해다. 시내버스는 구불구불 동네마다 다 들른다.

오늘은 만경강 봉동에서 고산 대아리까지 걷는 날이다. 봉동은 봉실산을 뒤로, 앞으로는 만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전형으로 봉황이 쉬어가는 곳이란 글을 읽었다.

25~6년 전 남편이 봉동의 군단에 근무했다. 그때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던 사람들끼리 만든 모임이 봉실회. 부대 뒷산의 이름을 땄다.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다. 가족들까지 마음이 맞아 해외여행도 여러 번 했다. 코로나19로 요즘 격조했는데 오늘 봉동에 갔었다고 전화를 해야겠다.

버스는 지난 일요일 비비정에서 봉동까지 만경강을 따라 걸었던 그곳 가까운 곳에서 내려줬다. 지난주 차 시간을 알아보려 터미널을 찾았고 터미널이 없어졌음을 알았다. 차 시간을 몰라 애를 태웠지만 시골 장날 구경 제대로 했다.

꽃나무 과일나무 묘목들이 많이 나왔다. 남편은 시장에서 뭘 사는 걸 좋아한다. 종자더덕 종자도라지를 사고 싶어 했다. 나는 남편 농사일 늘어나는 게 싫어 고개를 흔들었다. 아주머니는 마나님이 싫다는데 집에 가서 싸우려고 왜 살려고 하냐고 한다. 조그만 더덕에 싹눈이 나 있는 걸 보니 포도밭 귀퉁이 놀고 있는 곳에 심어도 좋을 것 같다. 약간 비스듬히 심으라고 알려줬다.

오늘은 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강변으로 나오니 여태까지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면서 가로수마다 이슬방울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여왕 대관식 장소 같다. 수천 아니 수만 개의 크리스털이 나뭇가지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나는 주인공이라도 된 냥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최대한 우아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런 땐 구두를 신어야 걸음이 멋있는데. 뒤꿈치를 들고 나 여왕, 나 여왕, 나 여왕좀 과장되게 발을 옮겼다. 남편이 웃고만 있다. ‘에이~ 웃옷을 벗어 빨리 깔아줘야지.’

버스도 제시간에 오고, 날씨도 좋고, 멋진 다이아몬드 환영식까지. 오늘 만경강 걷기 순풍 순풍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화려함은 순간이라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금방 걷히고 본연의 만경강이다. 봉동인락이란 곳을 지난다. 이곳은 사람과 물이 만나 자연환경과 봉동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만경강 물길 따라 사람과 자연이 모여 즐겁고 안락함을 느끼는 곳이란다. 동네 앞으로 강이 흐르니 인성이나 인심이 넉넉하고 여유롭고 자연의 이치를 잘 알아 삶이 깊이 있고 순리가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 좋은 동네란 생각이 들었다.

세심정을 얼마 남겨놓고는 노거수가 즐비하다. 250, 300년 된 느티나무, 팽나무들이 어마어마한 몸피와 기상으로 입이 딱 벌어지게 한다.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서 뵈듯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손이 모아졌다. “노인 한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데 이 나무는 도서관 몇 개를 간직하고 있을까. 앞으로도 마을의 안녕은 물론 만경강도 잘 지켜 달라고 허리를 굽혔다.

고산과 운주에서 흐르는 물이 합수하는 곳에 서익 선생이 정자를 짓고, 만 그루의 대나무를 심고 스스로 만죽이라 부르며. 항상 마음을 청결하게 씻는다는 의미로 세심정이라 이름을 지었다. 나도 그곳에 앉아 쉬었다. 바람이 연주하는 대나무소리와 바로 밑 보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가 어느 오케스트라단의 음악보다 조화롭다. 봄이 오는 만경간의 경치는 덤이다. 어찌 나쁜 마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귀도 눈도 대 호강을 했다.

고산에서 유명한 것은 고산미소. 고산에는 맛있는 소고기가 있다는 뜻이다. 아주 유명해서 매일 매일이 장날이다. 나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가 꽉 찼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코로나19가 무서워 혹시 몰라 준비한 빵으로 얼요기를 하고 뒤돌아 오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고산을 지나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만경강도 국가하천에서 전라북도 하천으로 바뀌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 물놀이 왔던 곳이 여기쯤일까 저기쯤일까 짐작을 해본다. 쭉 가면 대아리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길은 드라이브코스로는 전국에서도 손안에 들어 친척이나 손님이 오면 전라도 구경시켜주는 곳이다. 다음 주 발원지인 밤샘까지 가려던 계획을 접고 대아리 저수지에서 만경강 걷기를 마감하기로 했다.

어느 해 목천포에서 대야를 거쳐 군산 바다와 만나는 곳까지 걸었기에 오늘로 만경강 종주를 마쳐야겠다. 다음 주 부터는 포도밭에 일하러가야 한다. 언젠가 또 우연한 기회에 밤샘에 가볼 수 있길 기대한다.

고산면 소재지로 뒤돌아와 터미널에 갔다. 9시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3시 반이 되어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차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고산미소에 지금도 사람이 많으면 그곳에서 먹지 말고 고기만 사가지고 갈 생각이다. 버스는 10분 뒤에 있다. 물론 익산까지 바로 가는 것은 없고 삼례에서 익산 행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 버스를 놓치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익산에 소고기가 없겠어.” 얼른 시내버스에 올랐다. 어디로, 어디로 빙글빙글 돌아 삼례 터미날에 왔고 그곳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출발하는 익산 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렇게 차 시간이 착착 맞는다면 누가 자가용을 가지고 다닐까. 만경강 걷기 마지막 날 차 한번 순풍 순풍이다.

 

2022.3.27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계획적으로 여기저기 들레길을 찾아 나서는 나들이가 무척 부럽습니다.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함에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다니던 야트막한 산 등산만 20여년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다른 곳을 찾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이 한 번씩이고...... 그저께는 돌부리가 여기저기 솟아난 비포장 내리막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저져 손바닥이 찢어지고 어깨를 다쳐 파스를 잔뜩 붙이고 집에서 꼼짝 못하고 있답니다. 아마도 며칠 쉬라는 신의 뜻인가 싶어 며칠 조신하게 근신할 작정이랍니다.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순풍 순풍. 저도 윤선생님 뒤쫒아가며 눈여행, 마음여행 잘했습니다, 봄내음 맞으며 자유롭게 떠나보는 여행.
저의 바램중 하나입니다. 아직도 머물고 있는 코로나의 잔재 조심하세요.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봉동장날에 사서 심은 종자더덕 종자도라지가 잎을 피웠어요.  어제 그것들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
이제 포도농사가 시작되어 여행은 잠시 접고 밭에 가서 일을 합니다.
5월, 계절의 여왕답게 좋은 일 즐거운 일 많이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