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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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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언홍 댓글 3건 조회 669회 작성일 22-04-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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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유산

 

                                                                      김언홍

  길을 가로 질러 공원길로 접어들었다. 구름 한점 없는 한여름 날씨가 등짝을 훅훅 달군다. 손부채로는 어림도 없는 열기를 달래가며 공원을 거의 벗어났다고 생각되어 지는 그때 낯익은 얼굴이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잘못 본건 아닐까. 멈춰 서서 다시 살펴봐도 틀림없는 그였다.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혹시 영식 아재 아녜요?”

볕이 시린 듯 한쪽 눈을 찡그리고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대꾸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가본 나무그늘 밑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그들 앞에 막 도착한 무료 급식차가 보였다. 갑자기 그가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서 무언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 빛바랜 손수건이었다. 낡고 헤어져 실밥이 나풀거리는 작은 손수건. 허리를 굽혀 그가 그것을 집어든 순간, 아직도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증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독이 올라 얼굴이 누리끼리해진 문방구집 여자가 찾아온 것은 해가 설핏해질 무렵이었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빨래를 개키던 어머니가 문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세요. 뭔 일 있어요?."

문밖을 힐끔 살펴보더니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와 어머니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저 건넛집에 말에요. 재식이네 문간방에 누가 이사 왔는지 아세요? 화가래요, 화가."

달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이사 왔다는 말투였다.

그래요.”

"그런데 세간이 여간 남루한 게 아니에요. 가족은 없느냐고 물으니 그냥 웃기만 하데요."

"이삿짐 옮기느라 바쁠 텐데 그건 또 언제 물었대요."

"히히히 암 것도 없습디다. 이불보퉁이 하나하고 밥해먹을 그릇 나부랭이 몇 개뿐."

"쯔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나 보네."

방문이 벌컥 열리며 아버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누가 이사를 왔다는 거야?"

아버지 소리에 문방구집 여자가 잽싸게 대문을 빠져나갔다.

창틈으로 내다보니 이사 왔다는 예의 그 사내가 이삿짐을 옮기는 게 보였다. 질끈 묶은 꽁지머리와 빛바랜 카키색 잠바가 눈길을 끌었다. 자그마한 키에 희나리처럼 바짝 마른 몸매가 왠지 측은해 보이는 사내였다.

알고 보니 그는 극장 간판을 그리는 화가였다. 정식화가가 아닌 보조화가라고 했다. 어른도 아이들도 그를 부를 때면 영식아재하고 불렀다. 나이가 몇인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고 그도 말하지 않았다. 해 뜨기 전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 늦게야 돌아왔는데 식사도 대부분 밖에서 해결하는 듯 했다. 이따금 쉬는 날 아니면 그릇 덜그럭 거리는 소리도 새나오지 않았다. 사탕이나 과자 따위를 사들고 와 아이들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부끄럼이 많았던 내가 먼발치로 보고 있으면 다가와 내 손에도 사탕을 쥐어주곤 했다. 가끔 극장표를 들고 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는데 그런 날 저녁이면 문방구집 앞에선 영락없이 술 파티가 벌어졌다. 소주 2 병에 삼겹살 한 근이 영식아재의 공식 메뉴였다.

"아 극장표도 공짠데 술까지 사남? 이건 예의가 아니지."

문방구 집 아저씨가 멋쩍어 머릴 긁적거리면 영식 아재는 두 손을 훼훼 저으며 "괜찮아요. 괜찮아 이게 몇 푼이나 된다고 흐흐흐" 하며 싱겁게 웃었다.

자넨 왜 혼자 사는 감, 가족은 없어?"

사람들이 물어보면 엉뚱한 이야기로 방향을 바꿨다.

제 소원은요. 돈 좀 모아서 자장면 집 차리는 게 소원이라 예.”

아니 화가 수입가지고는 못살겠는감?”

그게 아니라 예....”

귀가 빨개지도록 귓불을 잡아당기며 멋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그에게 더 묻는 사람도 없었고 그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구레나룻이 거뭇거뭇한 얼굴에 검정 고무줄로 질끈 묶은 꽁지머리를 하고 보일 듯 말듯 한 미소를 입 꼬리에 달고 무심한 듯 언덕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새벽부터 안개비가 어슬렁거리던 날이었다. 격일제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귀가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흔들었다.

"일어나 봐, 일어나 봐 응."

"왜요? 왜 새벽부터 수선이에요."

무슨 소릴 들은 것일까. 엄마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진짜에요? 설마....."

내가 들었다니까."

누구한테요?"

알거 없어, 누구라고 얘기하면 당신이 알아?"

세상에나……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이 살인이라니."

사람이란 말이야 그 사람 안에 들어가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거야, 그러니 당신도 조심해."

그날 오후 내내 문방구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수군 거렸다. 영식 아재의 방은 밤새도록 불이 꺼져 있었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꽤 오랫동안.

 

비탈이 가팔라 나이든 노인들은 오르기 힘들다고 중간에 아무데나 걸터앉아 숨을 돌려 다시 걸음을 놓는 산동네였다. 어둠이 내리면 저 아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숨차게 달려와 잠깐씩 들여다 보고가기도 했다. 일명 달동네라 부르는 곳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제일 높은 사람들이라고. ! 다 내려다보며 살잖아. 우리가 제일 높은 사람들이여!“

제식이 아버지의 자기변명처럼 남산의 철탑 상부가 희미하게 건너다보이는 달동네 사람들은 제일 높은 사람들이었다. 없이 살아도 다툼 한 번 없던 동네였는데 살인자라니.

영식 아재한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이웃들도 말을 아꼈다. 살인자를 가까이 두고 있었다는 게 큰 허물이라도 되는 양 쉬쉬했다.

"그래도 기다려봐야겠지요?"

제식이 엄마가 우리 어머니에게 넌지시 물었다.

"글쎄 낸들 뭘 알아야지..."

영식 아재의 죄명이 입을 막았던 듯 했다.

"우리도 방세 받아먹고 사는 처진데, 어쩜 좋데요."

영식 아재의 소문이 퍼진지 어느새 두 달이었다.

"면회는 가봤어요?"

문방구집 여자의 말에 제식이 엄마가 인상을 팍 썼다.

"면회요?"

", 한 지붕 밑에서 가봐야 도리 아니겠어요?"

"에구 사람을 죽였다는데 면회는 무슨.."

"살인이 아니라 간첩질하다 잡혀갔다는 것 같던데...."

영식 아재가 사실은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이 발각되어서 잡혀간 거지 살인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는 거였다. 살인보다도 더 나쁜 게 간첩 질이라고 문방구집 여자가 침을 튀겼다.

"사람을 죽인 게 더 나쁘지 간첩 질보다."

"아니지, 아니야! 간첩 질이 더 나쁘지, 간첩 질 하느라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 김신존지 뭔지 보라고, 떼로 몰려와서는 청와대 쓸어버린다고 난리 치지 않았어? 그때도 사람들 많이 다쳤잖아.”

"그래도 사람 죽이는 게 더 나쁜 거지.”

본 사람은 없고 소문만 무성했다.

한동안 비어있던 영식 아재의 방은 대학을 다닌다는 학생이 새로 들어왔는데 공부는 뒷전이고 날마다 기타 치는 소리가 골목을 흔들었다. 영식 아재에 대한 이야기도 차츰 희미해져 갔다.

 

제식이네 집 담벼락에 바싹 둘러친 천막창고 안에서 영식 아재의 짐이 주인을 기다린 지 삼 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꽁지머리 대신 홀랑 밀어버린 민둥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영식 아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뜩이나 왜소한 몸이 더욱 형편없이 초췌해진 몰골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무슨 몹쓸 물건이라도 본 것처럼 슬금슬금 피했다. 그가 살던 방은 그새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어서 그가 살던 흔적을 말끔히 지웠지만 아쉬운 듯 문 앞을 서성거렸다. 짐을 찾는다며 그가 제식이 아버지 뒤를 따라 천막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혹시 버리거나 그런 건 없었지요?"

그가 묻자 제식 아버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없어진 게 있는가? 문방구집 아주머닌 알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는데..."

창고에 짐을 쟁이던 날 문방구집 여자가 영식 아재의 물건들을 들척거렸다는 것이었다.

어느 틈에 왔는지 문방구집 여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 참, 이봐요. 아무리 아쉬워도 내가 남의 물건을 뭐하러 가져가요. 제식이 아버지도 똑바로 말해요. 내가 가져가는 걸 봤어요?"

"가져가는 건 못 봤지요, 짐을 쑤석거리는 건 봤지만."

", 살인을 했다고 하기에 혹시 무슨 일기장 같은 거라도 있나 해서 호기심에 짐을 들춰보긴 했어요."

영식 아재가 펄쩍 뛰었다.

"누가요, 내가요?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요?"

 

일순 정적이 흘렀다. 둘러섰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영식아재한테로 향했다.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삼 년 전 그날, 하던 일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머리도 식힐 겸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차나 한 잔 할까 싶어 길 건너 찻집 골목으로 들어서려는데 패싸움이 벌어졌는지 골목 안이 온통 난장판이었다. 가게 앞에 세워둔 입간판들이 마구 쓰러져 있었고 깨진 술병들이 여기저기 뒹굴었다. 사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함지르는 소리가 큰길까지 들렸다. 치킨 집 앞에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피 묻은 칼이 그 곁에 뒹굴었다. 우선 그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사내를 끌어안고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는데 잠시 뒤 범강장달 같은 사내들이 덤벼들어 다짜고짜 그를 에워쌌다. 그새 골목은 조용해져 있었고 가게들 마다 셔터를 내린 채 기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갔다.

때마침 정부에서 깡패 소탕작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휘말려 간 곳이 삼청 교육대였다. 아무도 그의 변명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과오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이 연일 계속됐다. 몽둥이질이 예사로 날아왔고 교관들은 그것을 즐기는 듯했다. 잠자는 시간 아니면 쉴 틈도 없었다. 연일 도로공사에 투입되어 뙤약볕과 씨름도 했다. 부상자가 속출했으나 벌건 아까징끼(머큐로크롬액)를 대충 바른 뒤 진통제 한 알이 다였다. 찾아와 줄 사람도 없었고 자신을 위해 변호해줄 그 누구도 없었다. 도망치려고 철책을 넘다가 잡혀서 교도기간이 배로 늘은 사람도 있었다. 죽어나간 사람도 여럿이었다.

"제가 찾고자 하는 것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준 유일한 물건입니다. 내 존재를 자각시켜주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값나가는 물건인가? 진작 살펴볼걸 그랬잖아! 하나둘 영식 아재의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창고 안은 영식 아재의 짐과 제식이네 잡동사니들과 뒤섞여 어수선했다. 한참 뒤 제식이 아버지가 무언가 찾아 흔들었다. 귀퉁이가 찢겨나간 누런 봉투였다. 안에서 나온 건 장미꽃무늬가 어지럽게 깔려있는 작은 손수건 이였다.

"이건가? 설마..."

"맞아요! 그거에요."

영식아재가 얼른 손을 내밀었다

어이없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낡은 손수건이구만, 그게 뭐가 소중한 거야."

제식이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수건을 얼른 뒤로 감췄다.

그렇게 소중한 거라면 그냥은 안 되겠는데...."

"맞아! 보관비라도 듬뿍 내라고.”

제식이 엄마가 맞장구치며 깔깔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제식이 아버지가 고무다라 위로 엎어진 것이.

"아이 시팔, 내가 내꺼 달라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손수건을 잽싸게 낚아채며 그가 소리쳤다.

"이건 그냥 수건이 아냐. 나를 지탱시켜 준, 내 존재를 자각시켜준 유일한 물건이지. 날 낳은 여자가 남겨준 유일한 물건이라고, 그 여자 냄새가 배어있어. 난 말이야. 밤마다 이걸 코에 대고 잠이 들었어. 나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걸 늘 확인하며 잠들었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 때로는 이걸 질겅질겅 씹으며 원망을 삭였어. 그리움이기도 하고 증오이기도 해 .... "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을 적은 작은 쪽지를 손수건으로 돌돌 말아 팔에 묶어 버려졌다는 그가 비틀거리며 비탈을 내려갔다. 영식 아재의 가슴에 안긴 건 사랑이었을까 증오였을까.

그가 급식차를 향해 걸어간다. 허름한 반팔 티셔츠 위로 기억속의 카키색 잠바가 흔들거린다. 이제는 껍질만 남은 증오를 끌어안고 그는 아직도 누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안개비 내리던 그 새벽의 섬뜩한 느낌을 되새김질 시키며 그가 급식차를 향해 걸어간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천애고아로 세상을 헐헐단신으로 살아았을 영식아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 누군가의 아들이며 자기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인 "낡은 손수건"! 그게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인 채 살아왔다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많은 생각과 고민이 교차되는 가슴 아픈 내용에 가슴이 먹먹하네요.

김언홍님의 댓글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날이 무척 따습네요
완연한 봄날입니다.
봄은 찾아왔건만 우리네 가슴에 진정한 봄은 언제쯤 오려는지요.
펜데믹탓에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니 답답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슬퍼네요. 삼청교육대 끌려갔다가 병신 되어 나왔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교사였던 아버지가 삼청 교육대 끌려가면서 풍비박산 난 집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세상 구석구석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인생살이가 있더이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