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그녀들의 봄나들이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자유글 그녀들의 봄나들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616회 작성일 22-04-23 18:34

본문

그녀들의 봄나들이

윤복순

 

날씨가 풀리고 여기저기서 꽃소식이다. 꽃구경을 간다고 야단들이다. 그 나들이를 이 봄 나도 가게 됐다. 어찌 흥분되지 않을까. 처음 가보는 곳이고 그녀들과 함께인데.

후배를 초대하면서 나까지 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진정되어 갈 때서야 알았다. 언제나 이렇게 한 박자 늦다. 주는 것만 복 짓는 게 아니라 잘 받는 것도 복 짓는 일이다.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가장 익산적인 것이 무엇일까. 특별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다. 오래 전 장구 배우러 다닐 때 장구를 몸에 묶으며 썼던 무명베가 있다. 머플러를 만들 수 있다. 천연염색을 해 하나씩 나눠가지면 좋을 것 같다. 한 가지색만 만드는 것 보다 각자 취향이 있으니 네 가지 색을 만들고 싶다. 치자, , 황토, 맨드라미. 설렘이 일었다.

치자는 건재약방에서 사면되는데 쪽은 어디서 살까. 그리고 황토는? 어지간한 땅은 오염이 되었으니 황토 구하기가 쉽지 않다. 맨드라미도 제철이 아니어서 그렇다. 의욕만 불탔지 금방 현실에 부닥쳤다. 황토 대신 봉숭아로 맨드라미와 같이 여름에 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동네 아주머니가 북부시장에 간다고 한다. 치자와 쪽을 부탁했다. 몇 번이나 확인 했는데도 어머, 나 까마귀고기 먹었나 봐. 치자 안 사고 그냥 왔네.” 그렇다, 우리 나이가. 다음 장날은 출발 하루 전이다.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구정뜨개실로 짜 보자. 옅은 커피색이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고 집중력이 떨어져 자꾸 코가 틀린다. 지구력도 없어 몇 줄 못하고 쉬어야 하니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언제 두 개를 짤까. 서울 사람들에겐 이걸로 해야겠는데. 어느 해 짜 두었는지 아이보리색과 하늘색 반반으로 만든 것이 있다. 자투리실로 한 것이라서 길이가 짧다. 궁색해 보인다. 손이 부끄러워서 안 되겠다. 날자는 바짝바짝 다가온다.

열심히 손을 놀렸지만 하나밖에 못했다. 혹시나 하고 농속을 뒤져 보았다. 시간 있을 때 하나씩 짜 놓는다. 갑자기 선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모임 식구가 많을 때를 대비해서다. 요즘은 코로나19로 통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기적처럼 하나가 있다. 하늘색이다.

장날 아주머니가 치자와 지초를 사왔다. 쪽이 없어 비슷한 색깔을 찾다가 샀다고 한다. 지초는 붉은색 계통인줄 알았는데 녹색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지 않은 색이라서 우선 치자만 해보기로 했다.

스카프에 무늬를 넣으려면 실로 묶어나 꿰매야 하는데 예쁘게 할 자신이 없어 단순하게 하기로 했다. 치자를 잘라 껍질은 버리고 씨앗을 문질러 색을 우려냈다. 씨앗을 걸러내고 명반을 넣어 녹였다. 무명베를 넣고 귀중품을 다루듯 조심조심 마음을 담아 골고루 잘 베도록 눌러 주었다. 치자, , 명반의 비율은 모른다. 그야말로 적당히 했다.

산뜻한 개나리색이다. 동네 사람들한테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받을 시간이 없다. 준비하는 동안 들뜸과 마음 졸임 때문인지 !!!”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얼른 하나를 더 만들었다. 얇아서 밤새 다 마를 수 있다.

후배에게 쪽지를 썼다. “고마워. 덕분에 행복한 날 하루가 또 추가되네. 4월하면 서울 나들이가 제일 먼저 생각날 거야. 특별한 봄나들이 만들어 줘서 고마워. 좋은 인연 좋은 사람.”

내가 스카프에 골몰하는 사이 후배는 만날 시간을 잡고 열차표를 예매하고 만날 장소를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내느라 수십 통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나는 항상 아무것도 모른 체 몇 시에 약국 앞에 계셔요.” 후배에게서 연락이 오면 그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 있으면 끝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남편이 혼자 서울 갈 일 생길지 모르니 이런저런 걸 알아두라고 하면 아니야 나는 비서 데리고 다닐 거야.” 배울 생각은 안 하고 순전히 입만 가지고 다닌다.

후배가 없다면 나는 찾아가지도 못해 아들이 나와서 데려다 줘야 했을 것이다. 후배는 똑똑해서 지하철 노선도 잘 알고 내 노인 우대 지하철 표도 사 주었다. 그 복잡한 종로 3가역에서 출구도 잘 찾았다. 나는 촌티를 내느라 차표가 말썽을 부려 그야말로 기어서 나왔다. 이런 나를 한 번도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데리고 다니니 얼마나 고맙고 자랑인지 모른다.

돈화문에 도착하니 S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창덕궁 후원을 구경시켜 주기위해 이곳을 몇 번을 다녀갔는지 모른다. 인터넷 예매가 잘 되지 않아 현장예매를 하러 왔고, 며칠 전에만 가능하다고 해 또 왔고, 답사를 위해 왔고, 오미크론으로 식당에서 식사할 수 없으니 포장되는지를 알아보러 왔고, 가까운 공원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러 왔고. 수도 없는 발품을 팔아 오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날씨가 흐림 예보여서 속을 태우더니 정성이 통했는지 며칠 전부터 일요일 날씨가 맑음으로 바뀌었다.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회장이 강남이 익산보다 더 먼가보다며 늦어서 미안하단다. 낙선재 해설사 예약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서둘러 들어갔다. 봄꽃이 만발한 꽃대궐이다.

비원은 문화해설사를 따라 다니는 동안 우리 팀 밖에 없어 여유로움이 좋고, 자연 그대로를 살린 넓음에 놀랐다. 그곳에 어울리게 배치한 부용지와 옛 규장각,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존덕정 일원, 옥류천 등등.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으면 더 흥미로웠을 텐데. 창덕궁 구경하는데 3 시간 반쯤 걸렸다.

S와 회장이 식당으로 음식을 사러 갈 때 배낭을 받아주었다. 드는 순간 허리가 훅 꺾였다. 이리 무거운 것을 지금까지 혼자 매고 다녔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 배낭 속에선 우유, 달걀, 바나나, , 키위, 참외, 포도, 과자 등등 먹을 것이 끝도 없이 나온다. 회장의 마음도 나만큼 달떴음을 본다.

익산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월요일은 약국이 바쁘다. 물론 나는 아니다. 후배가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가 쉬라고 혼자 가겠다고 했다. 후배 남편이 마중을 나왔고,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데 기어이 집 앞까지 데려다 준다. 후원을 거닐며 왕족이 된 기분이었는데 끝까지 왕족이 되었다. 후배는 KTX값도 받지 않는다.

약사문인들의 왕궁나들이로 화창한 봄날에 윤 마마가 되어보았다.

 

2022.4.10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화려한 왕궁 나들이 준비하는 과정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하고 재미 있었습니다. 봄이 오면 비원으로 들어가 창경궁 벚꽃 구경을 하던 지난 60년대 말 생각이 절로나네요. 게다가 동물원까지..... 이봄 선생님의 나들이에 저도 심정적으로 동참해 구경하는 즐거움 이었습니다.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서울 약사들이 내가 만들어 준 머플러를 두르고 출근하는 사진을 찍어 보냈네요.
잘 어울려 기분 좋았습니다.
여행은 준비할 때가 더 신나고 설레고 호기심이 생기고 행복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