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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헌화가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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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2건 조회 614회 작성일 22-04-2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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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가를 떠올리며

     박래여

 

 집 주변 숲이 온통 발그레하다. 진달래꽃 사진도 찍고 꽃가지 하나 꺾고 싶어 숲에 들었다. 금세 힘에 부친다. 진통소염제를 꾸준히 먹을 때는 기운도 나고 다리가 가벼워 좋아진 것 같았다. 약을 떼고 하루가 지나자 다시 몸이 천근이다. 약 기운으로 버텼다는 것을 알았다. 노인들이 버티는 힘 역시 약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도 약봉지 끼고 살아야 할 나이가 됐다는 것을 자각한다. 약 먹기 싫은데도 몸이 아플 때는 약을 찾게 된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수명도 길어졌다. 노인은 약으로 산다. 나는 양약보다 한약이나 민간약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마당가에 지천인 풀도 개체를 따져보면 약 아닌 것이 없다.

 

 곰보배추가 눈에 띈다. 곰보배추는 말려 놨다 차로 끓여 먹거나 생으로 먹을 수도 있다. 독성이 없다고 하지만 야생풀은 대부분 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독성을 중화시키는 방법만 알면 몸에 좋은 약이 된다. 곰보배추는 일설에 연골 재생을 도운다고 해서 마당가에 있는 것들을 채취해 깨끗하게 씻어 요구르트와 갈아서 마시기도 했다. 부작용은 없었다. 연골 재생을 하려면 꾸준한 복용이 필요한데 약초로 소문나면서 귀해져버렸다.


 곰보배추를 돈 주고 사려면 살 수도 있다. 한 때 곰보배추가 몸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났었다. 한약을 취급하는 약제 상이 동네에 와서 곰보배추를 구했다. 할머니들은 일을 삼고 곰보배추를 캐러 다녔다. 봄 한 때 돈벌이가 되면서 곰보배추 씨가 말랐다는 소문이 났었다. 지금은 곰보배추를 재배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가끔 시장에 가면 곰보배추를 파는 장사꾼을 만난다. 저걸 어디서 캤을까. 불신 먼저 한다. 길섶에서 캔 것이거나 제초제 친 곳에서 캔 것이라면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내 손이 보배다. 내가 거둔 것이 아니면 믿음을 못 가지는 것도 병이다. 그만큼 사회 전반에 가짜와 사기가 판을 치기 때문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그 불신에 길들어버린 것 같다.


 예부터 먹을거리로 장난치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을 하지만 돈벌이에 눈독을 들인 사람은 양심보다 돈이 먼저다. 면전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기 십상이다. 중국산 참깨나 들깨, 고춧가루 등등, 수입 농산물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은 예사다. 얼마 전 김치 파동도 있었다. 다 썩은 무와 배추를 가지고 장난을 친 업체가 뉴스를 탔다. 그 김치공장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여전히 양심을 저당 잡히고 사업을 하지 않을까. 예전에 이웃아주머니가 김치공장에 다녔었다. 공장 김치는 입에도 안 댄다고 했었다. 요즘 음식점에도 김치를 직접 담그기보다 김치공장에서 납품을 받는 집이 많다고 들었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내 나이쯤 되면 눈으로 봐도 감을 잡는다. 공장 김치인지 직접 담근 김치인지 안다.


 친구가 시장에 나온 쑥은 믿을 수가 없다며 쑥 좀 캐서 보내줄 수 없느냐고 한다. ‘그때 그 쑥을 효소 담갔더니 참 맛있더라.’. 내가 보내줬거나 그 친구가 와서 뜯어간 것이지 싶다. 소쿠리와 칼을 챙겨 마당가를 돌면 한소쿠리는 캔다. 쑥이 좀 더 흔해지고 많이 자라면 친구에게 보내줄 정도로 뜯을 수 있을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내 능력으로 어렵다고 했다. 쪼그리고 앉아 쑥 캐는 것도 중노동이 되어버린 몸이다. 건너편 고사리 밭가만 가도 흔한 쑥이다. 발품만 팔면 되는데도 그 발품 파는 것도 내겐 무리다. ‘휴가 받으면 내려와서 뜯어라. 효소 담글 쑥은 오륙 월 것이 약쑥이다.’ 그렇게 말했지만 친구에게 미안하다. 시골에서는 발품만 팔면 흔한 쑥도 도시에서는 돈 주고 사야하는 귀한 쑥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해가 설핏 기운다. 농부는 생선찌개 끓이는 법을 전수받고 무 한 뿌리 챙겨 두 어른 저녁 차려드리러 간다. 오전에 두 어른 옷가지 빨래도 해 널었다니 마누라 없어도 살겠다. 나는 은근한 햇살과 진달래꽃빛에 마음을 주며 닭 날개 요리를 할 채비를 한다. 찻상위에 꽂힌 진달래가 환히 웃는다. 참 곱다. 헌화가가 떠오른다. 수로부인에게 절벽 위의 진달래꽃을 꺾어 바친 노옹은 산삼이라도 먹었지 싶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봄에 돋아나는 모든 풀을 약재이며 먹을 수 있는 채소라고 하지요. 그럼에도 이 봄 역시 들이나 산야를 찾아 산나물을 캐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신록을 맞고 있네요. 세월 이길 장사 별로 없지요. 자난날부터 줄기차게 오가던 등산길에서 아무도 나를 추월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팔순(八旬)을 코앞에 둔 때문인지 요즘엔 하루에도 여남은 팀이 나를 제치고 앞서가더군요. 아! 세월이여!를 속으로 되뇌이기를 반복한답니다.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가무새 타던 숲이 풋풋해졌어요. 샘, 건강하시고 항상 늘 제자리에서 빛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