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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싸가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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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695회 작성일 22-12-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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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가 없다


싸가지는 싹수*의 방언 즉 사투리이다(강원, 전라). 이는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를 속되게 이르는 말. 또 그러한 예의나 배려가 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원래 “희망이 없다”, “가망이 없다”, “아마도 안 될 거야”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예의나 배려가 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개념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이 불친절하거나 적대적인 경우’를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식물이라면 땅 속에서 싹이 돋아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파란 색채를 띄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새로 돋아난 새싹이 노랗다”는 사실은 몹쓸 병에 걸린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으리라. 이처럼 희망을 가질 수 없이 “싹수가 노란” 상황인 “싸가지가 없다”에 대한 여러 관점의 생각이다.


우리사회에서 어른이 아랫사람을 한마디 말로 휘어잡으려 하거나 매도하는 말이 “싸가지가 없다”는 언사이지 싶다. 공자왈(公子曰) 맹자왈(孟子曰) 읊으며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따지던 유교(儒敎)가 바탕이던 시절의 철학이나 가치관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어른 공경이라는 신성불가침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伝家の宝刀)’를 앞세워 어른에게 함부로 말대답을 하거나 과한 행동을 보일라치면 가차 없이 일갈하는 말이 “싸가지 없다”는 질타였지 싶다.


그 대표적인 유형은 크게 두 가지일 법하다. 먼저 “예의나 개념이 없을 경우”에 대한 질타로 “싸가지가 없다”가 사용되는 예이다. 이런 갈래로는 첫째로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남의 것을 자기 것인 양 멋대로 가져가거나 사용하는 등 무개념 행동을 자행하는 경우, 둘째로 자신은 고마움이나 사과의 표현을 꺼리면서 반대로 남에게는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는 경우, 셋째로 대인관계에서 상하를 막론하고 자기 부하나 수하 대하듯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경우, 넷째로 내키지 않거나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을 괴롭히는 공격적인 행위, 다섯째로 아무에게나 하대를 하며 하급자나 아랫사람에게 부당하게 군림하는 파렴치한 행위 따위를 들 수 있겠다. 한편 사회적 관계에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듣기 쉬운 경우이다. 즉 “갑”과 “을”의 처지에서 우월적 지위의 입장인 “갑”이 약자인 “을”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욕설, 폭언, 폭행 같은 행위를 자행할 경우 그 말을 들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물질적 가치를 지고지선의 목표로 했던 압축성장 시절 교육의 폐해일까. 오늘날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德)이 부족”한 재승덕박(才承德薄) 유형의 인재들이 넘쳐난다. 현실적으로 “지식이나 언변, 문장 등 타고난 임기웅변 처세에 능한” 재주꾼들은 즐비한데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격적 능력”인 덕을 갖춘 인재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푸념 섞인 하소연이 숱하다. 이 같은 재승박덕의 인재들은 재능은 뛰어날지 몰라도 덕의 부족으로 후덕한 인간미가 부족한 까닭에 툭하면 언행불일치나 표리부동한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싸가지가 없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날 정치인을 존경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불신이 커져 지금은 그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오늘날 그들이 피터지게 벌이는 싸움판에 횡행하는 언행은 저잣거리의 패륜아들과 다를 바 없이 거칠고 가볍다. 이따금 방송에 보도 되는 그들의 망발에 가까운 언행을 어린이들이 볼까 두렵기도 하다. 예로부터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했거늘 너무도 가볍고 천박한 막말이 난무하는 난장판을 연상시켜 어지럽다. 일개 국회의원이 자기 당 출신의 국회의장에게 “GSGG”라고 패륜적인 언사를 퍼부으며 욕이 아니고 “Governor Serves General Good(정부는 국민의 일반 의지에 봉사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궤변으로 뻗대 하는가 하면, 왕사(王師)인척 대통령 선거 때마다 등장하던 어른이 대통령 후보 측을 향해 “주접을 떨어 놨던데...”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작금이다. 


한편 최근 정치 선배라며 젊은 당대표에 대해 충고랍시고 언론에 대고 나팔을 불며 “꼰대 짓”을 하는가 싶더니, 쌈닭을 빼닮은 25살 아래의 당대표는 “내지른다”는 막말로 맞받아치는 추태를 연출하며 서로 잘났다고 아옹다옹하며 얼굴 뜨거운 이전투구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다. 어느 모로 따져 봐도 소인배의 치킨게임(Game of Chicken)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 사태에 대해 양비론(兩非論)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선배 정치인도 잘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부모가 유사한 행동을 했어도 과연 막말에 가까운 “내지른다”라고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가볍고 천박하며 혈투를 방불케 하는 언행으로부터 품위를 지키려는 자정 노력을 보일 때 그 철면피들을 제대로 대접하는 풍토가 살아날 것임을 되새겨보는 지혜로운 자성과 성찰이 전제 되어야 한다. 


세상이 변한 때문에 그 옛날처럼 권위나 어쭙잖게 나이를 앞세워 젊은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찍어 누르려는 “싸가지 없다”라는 표현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아울러 지난 세월의 일그러진 언어문화와 결별해야 할 시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세월이 도래했음에도 나나 내 가족이 듣지 않기를 바라는 말의 대표적인 하나가 그것이다. 그런 때문일까. “싸가지가 없다”라는 말이 풍기는 부정적인 어감(語感) 때문이리라.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닌 “싸가지가 있다”라는 표현까지도 괜스레 듣기 거북살스럽다. 같은 의미인 “싹수가 있다”라는 표현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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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싹수 :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 유의어로 가망, 싹, 희망이 쓰이고 있다.


경남문학, 2022년 겨울호, 제141호, 2022년 12월 5일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댓글목록

김춘봉님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저도 얼마 전, ‘싸가지가 없다’를 실감했습니다.
안양에서 몇 년 전, 김포로 이사를 왔습니다.
4년 임대 기간이 끝나고, 분양으로 전환된 아파트입니다. 
임대기간 중 고가의 소나무들이 말라 죽었고, 명세서를 보니까 관리비가 비싼 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기존 관리회사가 시행사와 수의계약을 하려고 - 자치회 구성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거위원장을 자청하고,
제1기 자치회를 구성한 다음, 입찰공고 과정을 거쳐서 다른 관리회사를 선정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아파트 홈페이지에 건설적인 글도 몇 번 올렸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
자치회장이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경찰서 수사과(사이버수사)에 가서, 3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직시해서 계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으므로 혐의 없음>
통보를 받고,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싸가지 없는 사람들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