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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역병과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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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1,371회 작성일 20-03-3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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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과 코로나-19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역병(疫病 : plague)인 코로나-19(COVID-19)가 중국의 우한(武漢)에서 유입되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의 잘잘못은 추후에 따질 일이고 하루 빨리 확산과 혼란을 막을 솔로몬의 지혜는 없는 걸까. 우리는 최근 몇 차례에 걸쳐 고약한 돌림병을 호되게 경험했다. 그 중에 사스(SARS : 2003), 신종플루(H1N1 : 2009), 메르스(MERS : 2012) 등의 위협으로부터 슬기롭게 버텨내며 면역력을 기르는 백신(vaccine)을 접종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바람직한 내성은 간데없고 속절없이 농락당하는 참담한 현실을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혹독한 시련을 겪었음에도 허술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엉성한 대응 체계가 더덜이 없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아 우울하다. 과연 우리는 침()도 모른 채 침통(鍼筒)을 흔들어대는 꼴이 아닌지 진지한 자성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세균이나 원충을 비롯해 스피로헤타나 바이러스 또는 리케차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환 중에 급성의 성격을 띄며 전신적인 증세를 나타내고 집단발생 하는 전염병(傳染病)을 그 옛날에는 역병이라고 했다. 이런 연유에서 공포의 대상인 이 병은 역신(疫神)의 노여움이나 탓으로 여기고 주술(呪術)이나 기도를 위시해서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폐해를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라님인 임금도 속수무책이었기에 천역(天疫)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한편 역병은 오늘날엔 거의가 전염병이라고 호칭한다. 그런가 하면 돌림병, 염병(染病), 유행병 따위가 유의어로 통용되고 있다.

 

오랜 옛날 돌림병으로 눈을 돌린다. 주로 쥐와 벼룩에 의해서 옮겨지던 페스트균이 얼추 4백 년(1340년도부터 1722) 동안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듯 창궐하며 유럽 인구 1/3 정도의 생명을 앗아갔던 흑사병(黑死病)이 대표적이었으리라. 한편 1500년 전후 유럽인들이 도래한 이후 대략 100년 동안 아메리카 인디언 80~90%가 감소했다. 그 주된 원인은 유럽인들이 전파했던 천연두와 홍역 같은 역병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땠을까. 조선왕조실록의 발췌 요약이다. 이에 따르면 5백년 남짓한 조선역사에서 돌림병이 나타났던 해가 무려 320년으로 14백건이 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하나가 순조 때 심한 기침과 설사를 하다가 며칠 내에 숨을 거뒀다는 질병이 바로 콜레라(cholera)였다. 아울러 조선시대 가장 두렵고 자주 되풀이 되었던 돌림병이 괴질(怪疾)이었다. 이 괴질이 흔히 염병이라고 불리던 장티부스(typhoid fever)로서 특히 정조 때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번져 수많은 생명을 휩쓸어가는 참혹한 아픔을 겪었다는 기록이다. 이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이들로 인해 목숨을 잃었던 무지렁이 같은 백성이 부지기수였다는 지적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병인 돌림병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은 반백 년 전까지도 매우 높았다. 내 어린 시절까지도 결핵(폐병)을 앓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가 허다했다. 그 병이 얼마나 두려운 재앙이라고 생각했으면 그 당시 문학 작품에 등장했던 주인공 중에 결핵을 앓거나 세상을 등지는 것으로 설정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실제로 몇 몇 문인들은 결핵을 앓다가 요절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게다가 어린 아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며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천연두(天然痘 : smallpox)는 두창(痘瘡)이나 포창(疱瘡)으로 불렸으며 속칭 마마(媽媽)라고 했다. 여기서 마마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천연두를 앓게 한다는 귀신을 뜻하며 호귀(胡鬼), 두신(痘神), 강남별성(江南別星)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천연두를 비롯해 홍역(紅疫 : measles)은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해당 지역 어린아이들이 집단으로 목숨을 잃기 일쑤였다. 나보다 세 살 위였던 형과 두 살 아래였던 남동생도 홍역을 앓다가 어린 아기 때 표표히 이승을 하직했다.

 

동물도 돌림병을 피할 수 없는 걸까. 툭하면 닭이나 오리 같은 조류에게서 빈발하는 감기인 조류독감(AI)이나 돼지콜레라 바이러스(cholera virus)가 있다. 또한 발굽이 2개인 동물(, 돼지, 염소, 사슴, 낙타)에 발병하는 구제역(口蹄疫 : foot and mouthdisease)을 위시해서 최근에 널리 퍼져 골치를 앓게 만든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따위가 언뜻 떠오르는 가축의 돌림병이다. 이들이 돌발적으로 발생했다면 일정한 지역 내에 생존하는 해당 가축을 적게는 몇 천 마리에서부터 수십만 마리를 모조리 살 처분하는 비정한 현실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생지옥으로 아수라장이다.

 

어린 시절 접종했던 백신은 기껏해야 천연두와 결핵이 전부이지 싶다. 그 시절만 해도 몇 년마다 휩쓸고 지나가던 홍역을 위시해 소아마비 백신도 없었다. 그런데 나에 비해 62년 아래인 손주 유진이가 이제까지 접종했던 백신의 종류와 수를 꼼꼼히 헤아려봤다. 어릴 적부터 각종 백신을 접종할 때마다 꼬박꼬박 적바림했던 소아건강수첩에 내용이다. 10개 영역(결핵, B형간염, 디프테리아 파상풍/백일해, 폴리오, 뇌수막염, 폐구균단백 결합백신, 홍역/볼거리 풍진, 일본뇌염 사백신, 수두, A형간염)에 걸쳐 29회를 비롯하여 독감(influenza) 14회를 합하면 지금까지 모두 43회 접종을 했다. 이런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백신을 더 접종하게 될까. 게다가 문명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할수록 접종의 종류는 대폭 증가될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현대과학을 맹신하며 이 같은 세상을 만들었다는 이유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며 기고만장해 우쭐대는 우리다. 그럼에도 폭우나 폭설, 가뭄이나 홍수, 끊임없는 돌림병 같은 자연 재해나 천재지변의 재앙이 닥칠 때마다 번번이 뒷북치며 허둥대기 일쑤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도 어쩌면 구상유취(口尙乳臭)한 풋내기들이 쏟아 냈을 법한 말의 성찬을 앞에 두고 주판알을 튕기며 네 편 내 편으로 나뉘어 으르렁 왈왈대는 패거리들이 으스대는 짓거리가 눈꼴 사나 울 뿐 아니라 섧고 떫으며 싫다. 오늘 현재 괴()바이러스인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된 확진자가 833명으로 가파른 증가세가 섬뜩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이에 대한 대응책의 대강의 뼈대이자 줄거리이다. 선별진료소 운영, 음압병동 확충, 집중치료병원 지정, 외출 및 집단모임 자제를 통한 사회적 거리두기, 모든 학교 개학 연기 같은 방역대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촘촘하게 운용될지 걱정이 앞섬은 이전의 설익고 어설펐던 대책들이 떠오르면서 배배꼬인 심사 때문일까. 그래도 코로나-19가 팬데믹(pandemic : 대유행) 우려 없이 재앙의 험한 꼴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길 곡진하게 빌 뿐이다.

 

2020224일 월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동물 세상이든 인간 세상이든 무리 지어 사는 세상에서 전염병은 필연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수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염병 창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요.
또 얼만큼 시대가 지나면
백신 하나로 모든 전염병의 면역력을 가지는 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진이가 맞은 백신 종류를 보니
이번 코로나19에서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유독 강세를 보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물론 예외적 상황들도 돌출되었지만요.

교수님이 그리 하나도 안 빠트리고 백신을 맞게 하였으니
유진이도 내성이 단단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