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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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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10회 작성일 19-12-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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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내의 빈자리
이병수
얼마 전 나는 평생 길동무인 아내를 잃었다. 짝지를 먼저 보내고 나니 그 빈자리가 자꾸 뒤돌아 보이고 허전하기도 하다. 지난날 아이들 키우면서 고생 속에서도 단란한 생활을 하던 때가 회상된다. 잘해 주었던 일은 별로 생각 안 나고 잘 못해 주었던 일이 더 많이 생각난다. 흔히 ‟있을 때 잘해줘〃 하던 충고가 떠올라 후회도 된다.
작고하기 전에 아내는 먼저 20년 전에 제주도 눈길에서 넘어져 대퇴부 골절상을 입고 대수술을 함으로써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몇 차례 넘어져서 허리와 다리 등에 골절상을 입고 자주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 후에 내장 질환도 생겨 신장염이니 췌장염이니 하여 자주 병원 치료를 받았으며, 6개월 간이나 재활 치료를 위해 전문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따라서 지난날 이미 나 혼자 독방생활을 한 지가 2년 반이나 되었음에도 그다지 허전한 줄을 모르고 지냈었는데 막상 영결식장에서 고별식을 하고 고향 선산에 무덤까지 만들고 나니,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절차까지 밟아서 그런지, 그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허전함과 외로움을 맛보게 된다.
지난 3년 세월 동안 병원과 집을 내왕하면서 간병을 하였는데, 간병사는 물론, 자식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회복을 시켜보려고 갖은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생각대로 회복은 안 되었지만 그나마 얼굴이라도 자주 보고 대화도 할 수 있었으니, 당시에는 살아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 큰 침대에 나 혼자 누워 있으니 어쩐지 그 빈자리가 자주 뒤돌아 보여진다. 그리하여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망인의 영정을 침대 위 벽에 걸어두고 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홀아비가 된 선배 친구가 귀띔을 해준다. 우선에는 그것으로 허전함을 달래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때가 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잊어버리려는 노력을 해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나의 평생 짝지 김정자 여사! 회고해보면 당신과 나는 전생의 깊은 인연이 있어 평생 길동무가 되어 잘 살아왔네요. 당신은 그간 지극정성으로 우리 부모님을 섬기며, 3녀 1남의 양육에 당신의 노고가 참으로 많았소. 어려운 경제생할 가운데서도 자식들을 올곧게 키우노라고 참으로 힘이 들었지요. 부창부수夫唱婦隨, 부족한 남편을 받들어 순종하고 서로 뜻을 모아 살아주었기에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최대사업인 <자식농사>를 그런대로 잘 지었다고 생각되오. 4남매가 모두 각기 사회에 봉사하며 단란한 가정을 이룩하고 마치 의논이라도 한듯 한 가정에 둘씩 자식도 두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소.
당신이 나와 동도인 교직이라는 성직聖職에 종사, 이 길을 걸어온 지 40개 성상, 아동교육을 담당해 평생을 바쳤으니 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었소. 더욱이 교직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 교육에 정성을 쏟음으로써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사랑 받는 모범교사로 회자膾炙되기도 하였지요.
비록 당신은 이승을 하직하였지만, 일생동안 아이들 성장을 도우며 온 성력을 기울여 봉사하였으니 그 헌신의 공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믿어지오. 따라서 저승에 가서라도 염라대왕께서 반드시 배려를 해주었을 것으로 믿어지오. 다만, 순서가 바뀌어 내가 당신을 앞세우게 된 것이 애통하고 서운한 일이기는 하오마는, 보람된 삶을 살고 가는 당신인지라, 이제 언제까지나 눈물만 흘리고 싶지는 않으며, 당신의 뒷자리 찾는다고 두리번거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오.
되돌아보면 아버지께서는 72세에, 어머니께서는 92세에 가셨으니 순서대로 가셨지요. 당신은 83세에 갔으므로 중간쯤은 되네 그려. “저승 가는 길에는 나이순서가 없다.”는 말이 실감 나네요.
다시 되돌아보면 나와 당신은, 평생의 길동무로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즐겁고 아름다운 일도 결코 적지는 않았다고 생각되오. 잊지 못할 일이 또 하나 생각 나네요. 나와 당신이 정년 후에 함께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였음에도 자신이 전적으로 운전대를 잡을 것이니, 나에게는 그냥 쉬라고 하면서 운전을 전담하였지요. 그리하여 20년간 고향에도 자주 가서 무공해식품도 갖다 나르고, 때로는 가족동반 관광여행도 즐겼을 뿐 아니라, 나의 마부馬夫 역할까지 톡톡히 하였으니 이 고마움을 어찌 내가 잊을 수 있으리오. 이런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하지마는, 결코 남 못지않은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도 생각되오.
그런데 내가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로서 성격이 무뚝뚝하여 당신에게 항상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랑한다.>는 다정한 말 한마디가 인색하여,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 후회가 되고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드오. 지난날 내가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 자꾸만 떠오르네요. 여보! 이제 뒤늦게나마 사과를 드리니 받아주어서 서운한 마음 다 털고 용서해 주기 바라오.
끝으로 나도 이제 머지않아 당신의 길을 뒤따라 갈 것이니 쉬 회우會遇할 날이 올 것으로 믿소. 그간 피안彼岸의 세계에서나마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고이고이 영면永眠하시고 극락왕생極樂往生하시기를 바라오.
(약력) 산청 출생. 아호; 현봉. 월간 수필문학 추천.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지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현) 수필집;<아름다운 마무리> <나의 인생 나의 문학>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의 <올해의 수필인상> 수상(2013).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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