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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을까/정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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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3회 작성일 19-12-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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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을까
        정지암
 
 
 
아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난다.
나는 아들을 의지하고 아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담보하는 험난하고 긴 여행이라 어쩌면 돌아올 수 없다는 방정맞은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다. 아들은 침착하고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나는 아들을 노예시장에 팔러 가는 비정하고 뻔뻔한 아비가 되었다.
자식을 제물로 삼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릉도원을 꿈꾸는지 나도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참담한 심정으로 아들의 시선을 의식적으로 피하며 묵묵히 길을 걷는다.
 
내가 간암으로 5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지난봄, 뻐꾸기 울음소리 가까이서 들리고 진달래가 만개한 날 나는 아주 슬픈 소식을 들어야 했다. 환자에겐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치료 종료 선언이었다. 의사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수단으로 간 이식 수술을 고려해보라는 말과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애당초 각오는 하고 있었고 마음도 비운 터라 매우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온 듯하여 지금 이대로 죽기엔 허망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내가 갑년이 되는 해까지만 살면 원도 한도 없을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회갑이라도 지난 후에 떠난다면 아내에게 덜 미안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어차피 인생이란 일장춘몽일 터고 누구나 때가 되면 흙이 되고 바람이 되어 흩어져 버릴 처지가 아니던가.
 
내년의 봄은 기대할 수 없으니 지금의 봄은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은 봄을 붙잡으려면 먼저 꽃을 머무르게 해야 한다지만 바람이 그냥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람을 탓할 수야 없지 않은가. 내 생명의 꽃송이를 언제 떨어뜨리어 버릴지 하루해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다.
아내가 의사가 한 말을 아들에게 전했나 보다. 아들이 즉시 이식수술 준비를 하자며 채근하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말았다. 살만큼 살았는데 자식의 배를 가르고 내가 산들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내 뜻이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기 전에 내 언행이 위선이라는 걸 알았다. 조금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 굼틀거려 후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들이 권하는 대로 묵묵히 따를 일이지 괜히 객기를 부린 것 같았다.
 
죽음의 균이 생살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듯하니 더욱 살고 싶다는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식을 제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아비의 마음과 어떻게 하던 살고 싶다는 마음이 하루에 골백번도 더 변덕을 부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에 시나브로 포로가 되었다.
아내가 외출하고 텅 빈집에 넋을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뚜렷한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요즈음은 걸핏하면 눈물이 나온다는 말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애간장을 녹이는 산비둘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뜬구름 사이의 낮달을 보아도, 유난히 붉은 황혼을 보아도,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눈물이 났다.
 
봄바람은 꽃을 데리고 멀리 떠나버리고 어느새 장마철이 되었는지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즈음 나는 지독한 우울증과 신경쇠약 비슷한 증상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수술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아들은 의사의 지시대로 체중 5킬로 이상을 줄였다. 짧은 기간에 체중을 줄인다는 게 쉬운 일이던가. 금연 금주는 기본이고 극기 훈련을 방불케 하는 모진 시간을 보냈었다. 이번엔 사양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간절히 원하지만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함)이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사양은커녕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염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아들의 얼굴이 핼쑥해 질 무렵 수술 날짜가 잡혔다.
101107, 아들은 나보다 한 시간 먼저 수술실로 갔다는 전갈을 받았다. 나도 침대 카에 실려 수술실로 향하는데 아래위 치아 부딪치는 소리가 주위에 들릴 만큼 떨고 있었다. 내가 깨어나지 못하고 수의를 입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혹시 아들에게 실수라도 하여 우환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더욱 나를 떨게 했고, 청이를 팔아 내가 눈을 뜨면 무엇 하느냐며 절규하는 심봉사의 모습도 내가 떠는데 한몫했다.
 
또닥또닥 내 얼굴을 또닥이며 큰소리로 계속 내 이름을 부른다.
눈 떠보세요.”
구름 위로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구천 지하를 홀로 헤매는 것 같기도 하다. “말이 들리면 눈을 떠보세요.”아련한 꿈길에서 서서히 정신이 드는 듯하다. “지금이 12일 아침입니다. 여기 온 지 24시간이 지났어요.” 몸은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소리는 또렷하게 들린다. 고로쇠나무보다 더 많은 호스를 온몸에 꽂은 채.
 
내가 의식을 차린 날 오후, 가족과 화상전화가 연결되었다.
내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으니 내가 눈을 뜨고 있는 모습만 가족이 확인하는 자리였다. 아내와 며느리가 돌아가고 며느리가 전해준 메모지를 간호사가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아버님! 고생 많이 하셨어요. 아범이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비몽사몽 간에 아버님을 찾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느냐며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는 것 같았어요. 아범의 깊은 효심에 제가 샘이 날 뻔했는걸요.“ -중략.-
 
흔히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말인 듯한데 왜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일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울컥 솟아오른다. 나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지 않았는데 아들은 나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깊은 줄 몰랐다.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간호사가 쉼 없이 냅킨으로 닦아주지만 몸속에 수분이 모두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 같다. 눈물을 닦아주고 있던 간호사가 감정이 복받쳤는지 흐느끼는 듯한 음성으로 한마디 한다.
이제 그만 우세요. 아드님이 보기 드문 효자라 선생님은 참으로 행복해 보이세요.”
무균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긴 지 나흘째 되는 날, 아들에게 변고가 생긴 것 같다.
아내의 어두운 얼굴이 그렇고 아들 방으로 드나드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대교 상징탑의 조명이 꺼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새벽 2시쯤이지 싶다.
 
아내가 나간 후, 불안하고 궁금하여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아들의 병실로 가보았다. 아들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채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진통제를 맞았지만 별 효험이 없다고 한다. 불 꺼진 휴게실 한쪽에서 아내가 흐느끼는 며느리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눈물이 나면 흘리고 울고 싶으면 울어라. 남편과 자식을 한꺼번에 병실 침대에 눕혀놓은 내 가슴은 숯검댕이와 다름 아니다.”
엘리베이터 모퉁이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등걸처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침 식사가 배달될 무렵 아들은 재수술을 위해 하얀 침대보를 덮고 수술실로 떠난다.
뒤따르는 아내와 며느리의 어깨가 오늘따라 가녀려 보인다.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치고 통곡한다.
여보시오! 내 아들 내려놓고 나를 데려 가시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오래도록 울었다. 그토록 흘렸다면 더 나올 눈물도 없으련만 나로 인해 온 가족의 심신이 피폐해졌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세월이 약이런가. 이제 아들은 완쾌하여 직장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흉한 흔적과 그루터기 같은 선명한 생채기를 어찌한단 말인가.
아들아! 고맙다. 나 어찌 너를 잊을까.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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