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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상쟁이-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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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19-11-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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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상쟁이

이규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어떤 관상쟁이가 있었다. 그는 관상 보는 책을 읽거나, 관상 보는 법을 따르지 않고 이상한 관상술로 관상을 보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상한 관상쟁이라 하였다. 점잖은 사람, 높은 벼슬아치,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앞을 다투어 모셔오기도 하고 찾아도 가서 관상을 보았다. 그의 관상은 이러했다.

부귀하여 몸이 살찌고 기름진 사람의 관상을 보고는,

“당신 용모가 매우 여위었으니 당신만큼 천한 이가 없겠소.”

하고

빈천하여 몸이 파리한 사람의 관상을 보고는,

“당신 용모가 비대하니 당신처럼 귀한 이가 드물겠소.”

하고,

장님의 관상을 보고는,

“눈이 밝겠소.”

하고,

얼굴이 아름다운 부인의 관상을 보고는,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한 관상이오.”

하고,

세상에서 관대하고 인자하다고 일컫는 사람의 관상을 보고는,

“모든 사람을 상심하게 할 관상입니다.”

하고,

시속에서 매우 잔혹하다고 일컫는 사람의 관상을 보고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관상입니다.”

하였다.

그의 관상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비단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분간도 잘 말할 줄 모를 뿐 아니라, 상대방의 동정을 살피는 데도 모두 반대로 보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를 사기꾼이라고 떠들어대며 잡아다가 그 거짓을 심문하려 하였다.

<중략>

“나는 여러 사람의 관상을 보았습니다.”

하기에,

“여러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이오.”

하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부귀하면 교만하고 능멸하는 마음이 자랍니다. 죄가 충만하면 하늘은 반드시 뒤엎어 버릴 것이니, 장차 알곡은커녕 쭉정이도 넉넉지 못할 시기가 닥칠 것이므로 ‘수척하다’고 한 것이고, 장차 몰락하여 보잘것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비천하게 될 것이므로 ‘당신은 천하게 될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빈천하면 뜻을 굽히고 자신을 낮추어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닦고 반성하게 됩니다. 막힌 운수가 다하면 트이고, 장차 만석의 녹과 부귀를 누릴 것이므로 ‘귀하게 될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요염한 여색이 있으면 쳐다보고 싶고 진기한 보배를 보면 가지려 하여, 사람을 미혹시키고 사곡(邪曲)되게 하는 것이 눈인데, 이로 말미암아 헤아리지 못할 치욕을 받기까지 하니 이는 바로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눈먼 사람만은 마음의 깨끗하여 아무런 욕심이 없고, 몸을 보전하고 욕됨을 멀리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나 깨달은 자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래서 ‘밝은 자’라고 한 것입니다.

날래면 용맹을 숭상하고 용맹스러우면 대중을 능멸하며, 마침내는 자객(刺客)이 되기도 하고 간당(奸黨)의 우두머리가 되기도 합니다. 관리가 이를 가두고 옥졸(獄卒)이 이를 지키며 형틀이 발에 채워지고 목에 걸려지면 비록 달음질하여 도망치려 하나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절름발이여서 걸을 수 없는 자’라 한 것입니다.

무릇 색(色)이란 음란한 자가 보면 구슬처럼 아름답고 어질며 순박한 자가 보면 진흙덩이와 같을 뿐이므로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고 한 것입니다.

이른바 인자한 사람이 죽을 때에는 사람들이 사모하여 마치 어린애가 어미를 잃은 것처럼 울고불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인을 상심하게 할 자’라고 한 것입니다.

또 잔혹한 사람이 죽으면 도로와 거리에서 기뻐 노래 부르고 양고기와 술로서 서로 축하하며 크게 웃는 사람도 있고, 손이 터지도록 손뼉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인을 기쁘게 할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놀라 일어서며 말하기를,

“과연 내 말 대로이다. 이것이야 말로 기이한 관상이구나. 그의 말은 새겨둘 만한 규범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따라 귀한 상을 말할 때는 ‘거북무늬에 무소뿔’이라 하고, 나쁜 상을 말할 때는 ‘벌의 눈에 승냥이 소리’라 하여, 나쁜 것은 숨기고 상례(常例)를 그대로 따르면서, 스스로를 성스럽고 신령스럽다 하는 바로 그런 부류이겠는가?”

하고 물러 나와서 그의 대답한 말을 적는다.


-출처:동국이상국집



사곡(邪曲) : 요사스럽고 마음이 바르지 못함

간당(奸黨) : 간사한 무리. 간도(奸徒). 간도(姦徒)

상례(常例) : 보통 있는 예. 항례(恒例)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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