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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목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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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3회 작성일 19-11-2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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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목성균


자고 나니까 링거액을 주사한 오른팔 손등이 소복하게 부어 있다. 링거액이 샌 모양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멀겋게 부은 아버지의 손, 중풍이 오신 고통스러운 말년의 손을 내가 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자지간의 생명의 바통인가. 나는 아버지의 말년, 그 손을 잡고 병고를 위로 해 드리곤 했었다.

아버지의 손은 퍽 크다. 내 손은 아버지의 손에 비하면 너무 병약하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숭배한다. 사랑한다. 어쩌면 지금 내 손이 아버지의 손과 똑같을까? 생명은 닮는다는 뜻일까?

고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가정실습(家庭實習) 때다. 집에 왔다가 모내기를 돕게 되었다. 뒷골 천수답에 모내기를 했다. 나도 열심히 모를 심었다. 식구들과 일꾼 몇을 얻어가지고 모를 심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빗물을 잡아서 논을 삶느라고 고삐에 넓적다리가 스쳐서 피가 날 정도였다.

우리 농사 중 파종의 대미는 천수답 모내기를 끝마치는 것이다. 힘들고 의미 있는 과정이다. 그날 점심때, 우리는 오동나무 그늘에 점심 들밥을 차려놓고 먹었다. 신록이 우거진 그늘에서 뻐꾸기가 낭자하게 울었다. 소들은 모를 심느라고 일으켜 놓은 구정물로 엉덩이에 흙덩이가 엉겨 붙은 채 우리 옆 오동나무 그늘에서 풀을 어귀적어귀적 씹으며 흘금흘금 오월 강산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우리 점심 차림은 너무 소박했다. 햇보리반과 묵은쌀이 반씩 섞인 밥에다 상추겉절이, 배추겉절이, 마늘잎을 넣고 조린 꽁치가 전부였다. 그리고 된장, 지금도 눈에 선한 황금색 튀장(토장) 한 탕기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그날의 점심 맛을 내준 것은 마늘잎 꽁치조림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입맛을 내준 것은 황금색 튀장이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상추이파리 서너 장에 밥을 두어 숟갈 푹 떠서 담고 그 황금색 튀장을 반 숟갈 듬뿍 얹어 꾸깃꾸깃해서 입에 넣으셨다.

아버지가 상추쌈을 입에 넣고 눈을 끔뻑하면 목울대가 아래위로 오르내렸다. 앞산을 건너다보며 볼이 미어지게 상추쌈을 잡숫던 중년 농부의 눈, 그 눈에 뻐꾸기 우는 녹음 방창한 산이 한 귀퉁이씩 그야말로 게 눈 감춰지듯 하는 것이었다. 그 쌈밥을 잡고 있던 두 손이 링거에 손등이 통통히 부은 지금의 내 손과 똑같았다.

그 후 가끔 뒷골 천수답에 모내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손등을 떠올려보곤 했지만, 실상 아버지 손등을 보고 천수답 모내기 점심밥 먹던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점심을 먹고 어디론가 가셨던 아버지는 잠시 후 싱싱한 칡잎에 소복하게 산딸기를 따 오셨다. 디저트를 구해 오신 것이다. 쌈밥처럼 두 손으로 잡고 들고 오신 것이다.

“받아라.”

나는 아버지의 손등까지 싸잡아 들었다.

아버지의 손은 육감적이고 내 손은 턱없이 왜소하다. 전혀 닮지 않은 손이 운명의 때에 보니 닮아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닮아 있다.





목성균 선생님 2004년 6월 27일 영면

작품집

명태에 관한 추억(문예진흥원 2003년 우수도서/하서출판)

생명(유고수필집-수필과비평)

작품출처 http://www.sdt.or.kr/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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